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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음악다방, LP 전문 올드 뮤직바

Sosahim 2006. 7. 1. 08:38

벽면 전체를 빼곡히 채운 오래된 LP. 추억 속 옛 노래를 들으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은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과도 같다. 우리는 지금 올드 뮤직 바로 간다.


             


공기가 쌀쌀해지고 하늘이 어둑어둑하게 내려앉을 무렵, 바의 간판에 불이 들어온다. 손님보다 먼저 공간을 채우는 건 익숙하고 아련한 추억의 팝 음악.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LP의 지직거리는 소리가 정겹다. LP 한 장이 다 돌아갈 무렵 출입문을 열고 하나 둘 모여드는 손님은 주인 겸 DJ와 친구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손님이 청하는 건 술보다 음악이 먼저. 뮤지션의 이름과 곡 제목이 적힌 메모지가 DJ에게 건네지면, DJ는 한쪽 벽을 빼곡 채운 LP 속에서 신기하리만큼 척척 음반을 뽑아낸다. 노래가 울려 퍼지면 사람들은 추억에 젖어들어 행복한 미소를 머금으며 술잔을 기울인다.


옛 소설이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광경은 디지털 세상 속 아날로그 공간, 바로 ‘올드 뮤직 바’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올드 뮤직 바의 주인공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쏟아져 나온 수많은 LP다.

올드 뮤직 바는 보통 1만 장 가까운 LP를 보유하며, 손님이 신청한 음악을 DJ가 틀어주는 시스템이다. 신청곡에 영상 자료가 있으면 DVD로 영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1970~1980년대의 음악 다방에 온 듯한 느낌. 지금이야 넘치는 음원과 기기 덕에 언제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사정은 달랐다.

풍류를 좀 안다는 젊은이는 낭만을 찾아 음악다방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이 DJ에게 건네는 쪽지엔 신청곡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 우정, 고뇌 등 청춘의 모든 것이 함께 건네졌다.

시대와 함께 자취를 감춘 음악다방은 요즘 ‘올드 뮤직 바’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LP 컬렉터들이 집에 더 이상 LP를 보관할 공간이 없어서 혹은 사람들과 좋은 음악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이유로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된데다 명망까지 있는 고참 올드 뮤직 바는 홍대 앞의 ‘별밤’, 대학로의 ‘샘쿡’, 신사동의 ‘트래픽’ 등. 초기엔 신촌, 홍대 앞, 종로 등 강북 지역에 몰려 있었으나 최근에는 압구정동을 비롯한 강남에도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올드 뮤직바를 운영하는 이들은 왕년에 음악다방 DJ로 이름을 날리던 중년의 아저씨에서 부모님 눈을 피해 LP를 모으던 30대 청년까지 제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올드 뮤직 바를 열게 된 가장 큰 이유를 물으면 입을 모아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보통 20년 이상 LP를 수집했고 개인이 소장했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엄청난 음반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음악에 쏟는 애정과 추억을 잘 버무려 맛깔스러운 올드 뮤직을 선사한다.
올드 뮤직 바를 찾는 사람은 주로 30~40대 이상의 LP 세대다. 대부분 젊은 시절에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며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찾아오는 단골이다. 손님의 연령대가 높고 단골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뮤직바의 위치나 주로 선곡하는 음악의 장르 정보를 얻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때문에 올드 뮤직 바를 찾는 사람들은 음악 좀 안다 싶은 사람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손님의 95%가 단골이에요. 그러다 보니 이곳에 와서 친구가 되는 손님들이 많죠.” 압구정동에 위치한 올드 뮤직 바 ‘전자신발’의 사장 서창동 씨는 올드 뮤직 바에선 모두가 친구라고 말한다.

전혀 연줄이 없는 손님끼리도 몇 번만 눈인사를 나누면 친구가 된다. 함께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은 물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가끔 신나는 춤판(?)이 벌어지는 것도 익숙한 광경이다.

올드 뮤직 바는 개인의 소박한 꿈으로 생겨났지만, 이제는 특정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닌, 추억이 있는 모든 사람의 공간이 되었다. ‘문 닫으면 절대 안 된다’고 당부하는 손님도 한둘이 아니다.

“가게 운영이 어려울 땐 언제든 도움을 청하라고 하는 손 큰 손님도 있어요.” 압구정동의 유명한 올드 뮤직 바 ‘핑가스 존’의 김남욱 사장은 든든한 후원자까지 생겼다며 보람을 느낀단다.

트렌드로 무장한 화려한 바가 등장했다 금방 사라지는 요즘, 올드 뮤직 바가 하나 둘 늘어나며 빛을 발하는 것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추억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올드 뮤직 바에서 지켜야 할 두 가지 에티켓

하나, 신청곡은 직접 DJ에게!
바의 각 테이블에는 신청곡을 적을 수 있는 메모지와 펜이 준비되어 있다. 메모지에 노래와 뮤지션의 이름을 적어 DJ에게 전할 땐 직접 DJ 박스로 가서 건넬 것. 테이블에 앉아 DJ나 직원을 부르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이다. 한 개인이 몇십 년에 걸쳐 모은 소중한 음반인 만큼 정중하게 청하는 것이 올드 뮤직 바의 불문율이다.

둘, 공공의 적(?)이 되지 말 것!
간혹 신청곡을 줄줄 적어놓곤 왜 내가 신청한 노래를 모두 틀어주지 않느냐며 짜증을 내는 손님이 있다. 올드 뮤직 바의 DJ가 공통으로 지적하는 최악의 손님은 바로 이런 공공의 적. 다른 사람도 함께 즐기는 공간이니 신청곡은 한 곡만! 다른 사람이 신청한 노래도 들을 수 있는 여유를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