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서 몸(?)으로 하는 '과'들의 진통 소리가 여전하다.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잠깐
이슈꺼리가 되어 체교과, 연영과 등에서 구타와 체벌이 문제가 되는 듯 했으나 결국 관습의 굴레 속에 은근슬쩍 다시 내던져진 것
같다. 과연 이런 폐습의 개선은 언제쯤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웃기는 사실은 구타와 체벌을 막아야 하는 교수와 졸업생 선배들은 이러한 폐단을 오히려
'배움' 과 '전통' 의 일부로 당연시하는, 때로는 성스러운 것으로 소중히 여기기 까지 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하면 또 사대주의란 소리 들을까? 까이꺼 듣지, 머... 왜 우리 애들만 패야
하나? 외국의 체육, 예능 종사자들은 안 맞고도 잘 하더만, 우리 애들은 패야만 말듣나?
교육에 대한 방법과 시스템의 부재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왜 굳이 패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런 사고방식은 곧 '우리 업계는 맞아야만 정신차리는 말귀를 못알아듣는
애들이 주력이예요' 라는 자학의 표현이거나, 혹은 '육체적인 고통과 조금의 정신적인 모욕감이 없이는 도저히 익힐 수 없는 너무나 귀하고 힘든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으니, 좀 알아봐주쇼' 하는 나르시즘적 공허한 딸딸이 중에 하나일게다.
불필요한 육체적 고통을 주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위험한 것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정신적 모욕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직업'이라는 개념이 깊이 와닿지 않는 어린 아이들에게 직업 교육에 가까운 것을 대학 교육이라는 형식으로 강압적으로
주입하려는 시도는 이미 이러한 억지스런 커리큘럼의 위험성을 태생적으로 내재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때리고
굴려야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흐음... 대가리가 클만큼 큰 나로선 와닿지 않는 이야기임을 솔직히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정신적인 한계 상황에서 자기 자신이 깨지고 더 큰 '나' 로 다시 태어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그럴 듯하게 포장하시는 몇몇 예술(체육) 교육가(?)들의 말씀이 와닿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인위적인
한계상황을 요리조리 수단방법 안가리고 피해온 내가 왜 아직도 요로코롬 요모양 요꼴로 맨~날 같은 신세한탄을 일삼고
있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긴 하다.
아, 누가 나 좀 밟아주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 잠시 뻗었다가 한 떨기
초사이언으로 화려한 불꽃처럼 다시 태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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