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를 절대적 희망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지식인 지식인 사회의 친 공산주의적 분위기에 부화뇌동한 피카소는 1944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 그림은 프랑스 공산당으로부터 혹독한 비평을 받았고 결국 프랑스 공산당과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을 못마땅하게 여긴 대표적 국가는 미국이었으나 프랑스 공산당 역시 그림을 칭찬하지 않았던 이유는 살인자의 실체가 불분명하게 표현된 점 때문이었다. 이 대작 속에는 전쟁의 참혹함과 황폐함이 우화적으로 표현돼있으나 중세 풍의 갑옷을 입은 군인들이 여자와 어린이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소재는 반미적이라고 할 만한 특정요소가 없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일부에서 1950년 10월 미군이 저지른 만행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에서의 대학살>의 모티브가 그러므로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등과 같이 한국전쟁시 미군이 가담한 사건들이 분명히 존재하긴 할 것이나 신천리 학살사건이 미군의 만행이라고 단정지을 명확한 근거는 찾기 힘들다는 것이 객관적 결론이다. 생전의 피카소는 자신이 공산주의자이며 자신의 그림은 공산주의자의 그림이라는 말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피력했다. 이것은 1937년 그가 콘도르 군단에 의해 폭격된 바스크 지방의 한 작은 마을의 참상을 고발했던 작품 <게르니카> 이후 또 한번 폭력의 잔혹성에 분개한 피카소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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