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모아모아

콧대높은 명품 ‘홍어 요리’

Sosahim 2007. 2. 8. 14:05

 

홍어삼합


“묵은지에 새우젓 살짝 묻힌 돼지고기 한 점 올리고, 그 위에 홍어 한 점 또 올려서 돌돌 말아 한 입에 확 물어봐. 막걸리는 그거 다 삼키고 10초 있다 마시고…잉?”

직장 선배의 말대로 삼합 한 주먹을 입안에 넣고 씹어버린 신입사원은, 온몸의 세포를 화들짝 놀라게 하는 암모니아의 파워와 눈앞에서 약 올리듯 실실 웃는 선배에 대한 배신감 등이 버무려지면서 그만 숨이 확 막히고 만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혼비백산하는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삼합의 첫 경험자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조금씩 입질을 시작하게 된다. 암모니아 냄새의 충격은 순식간이며, 곧바로 이어지는 홍탁과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의 조화가 만들어 낸 오묘한 맛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아! 그 형용할 수 없는 맛의 신비함이란….

지금 흑산도 앞바다에서는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홍어잡이가 한창이다. 홍어잡이는 주낚시로 이뤄지는데 400여m 되는 낚시를 홍어의 동선에 뿌려놓고 2~3일 뒤 걷어올린다.

주낚시에는 미끼가 필요없다. 키가 1.5m나 되는 거대한 덩치의 홍어 무리가 온 몸을 펄럭이며 유영하다 낚싯바늘에 몸의 일부라도 걸리면 낚이게 된다.

요즘 홍어 한 마리의 산지 경매 가격이 40만원에서 70만원을 호가하니, 어선 한 척에서 100여마리를 잡아 올린다면 그야말로 대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육지로 올라온 홍어는 홍어찜, 홍어회, 홍어탕, 삼합 등 독특한 음식으로 만들어져 식탐가들 입으로 들어간다. 산 홍어를 깨끗한 마른 수건을 닦아 회를 떠서 먹고, 배를 가르면 나오는 애(홍어 간)는 ‘어르신도 몰라보고 먼저 먹는 게 임자’라 할 정도로 맛있는 영양덩어리이다.

홍어회무침은 싱싱한 홍어회에 미나리, 파, 양파, 마늘 등 갖은 양념을 넣어 손으로 조물락 버무려먹는데, 잔칫상에 빠질 수 없는 메뉴이기도 하다. 대도시에서는 맛보기 힘든 홍어탕 맛도 최고다.

홍어 내장에 시래기나물, 파 등 양념과 된장을 듬뿍 넣어 끓이는 홍어탕은 술안주로도 애용되며 다음날 숙취 해소에도 그만이다.

 

홍어탕

홍어의 제맛을 보기 위해서는 당연히 흑산도로 가야 한다. 작년과 올해에는 어획량이 꽤 늘었다고는 하지만, 그 양이 전국으로 유통될 정도로 풍부하지는 않아 많은 양이 흑산도, 홍도 등 신안군 일대와 목포에서 소비되고 있다.

그러니 서울 등 대도시로 올라오는 양은 홍어 ‘거시기’만큼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공급이 부족하다 보니 전국의 홍어집에서, 심지어 흑산도에서도 수입 가오리가 유통된다.

그러나 굳이 외국산이라 해서 거부할 필요는 없다. 일반인의 입맛에는 그닥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도는 확연히 다르므로, 흑산도까지 들어갔다면 돈을 더 내더라도 흑산도 홍어를 먹어야 하지 않겠나.

흑산도는 바닷물 색깔이 새카맣게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도해를 대표하는 섬답게 그 아름다운 풍광 하나만으로도 여행할 만한 곳이다.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으며 지금 이곳에 들어가면 싱싱한 홍어는 물론 전복, 가리비, 멸치, 우럭, 성게 등을 맛볼 수 있다.

열목동굴~홍어마을~범마을~칠성동굴~돌고래바위~스님바위~촛대바위~남근석~거북바위를 차례로 구경하는 일주도로를 달릴 수도 있다. 그리고 흑산도 근처의 홍도, 태도, 비금도, 우이도 등 아름다운 다도해의 깊은 풍경에 흠뻑 젖을 수 있다. 흑산도 여행 문의는 061-275-9300(흑산면사무소).

홍어는 해독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서 소화에 도움을 주고 장청소 기능까지 갖고 있다. 기관지가 약한 사람이 홍어를 즐겨 먹으면 효과를 볼 수 있으며 남도의 소리꾼들이 목소리를 탁 트이게 하기 위해 홍어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홍어 살과 간에는 불포화지방산이 75%나 들어 있으며, 그 안에 EPA와 DHA 성분이 35%가 넘는데, 이것들은 관상동맥질환, 혈전증, 뇌졸중, 심부전증 예방에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영양분이 그대로 내 몸에 흡수되길 바란다면 홍어찜 요리가 최고다. 모든 음식의 영양을 그대로 살리는 데 찜요리가 으뜸이라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홍어찜은 집에서 해먹기도 편하다.

삭힌 홍어를 사다 깨끗이 닦아 꾸덕해질 때까지 말린 다음 양념장을 발라 찜통에 넣고 20~30분 정도 쪄내면 맛있는 홍어찜을 먹을 수 있다.

대도시나 그 주변에서도 영양가 만점의 홍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자유로 일산구간에 있는 우슬이네(031-923-7100)는 흑산도산 홍어로 만든 삼합과 무침, 정식으로 유명하다.

노량진역과 대방역 중간쯤에 있는 여수식당(02-813-1952)도 흑산도 홍어로 회를 내주는데 한 접시에 6만원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동동주와 함께 먹으면 환상이다. 안국동 목포집은 홍어 삭히는 기간을 예약할 수 있는 곳인데 홍탁의 명가로 콧대 높은 집이다(02-722-0976).

홍어나 가오리 하면 별로 착해보이지 않는 폐설 한 두 가지를 누구나 갖고 있다. ‘만만한 홍어X’가 그 대표적인 문장인데, 그것에도 이유는 있었다. 대부분 생선이 그렇듯이 홍어도 암컷이 더 비쌌다.

해서, 양심이 불량한 일부 장사꾼이 수놈 홍어의 ‘거시기’를 잘라서 암컷으로 위장하기도 했고, 어물전에 홍어가 나타나면 시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칼을 들고 지나가다 그것을 싹뚝 잘라 가도 주인이 못본 척할 정도로 장사에 불필요한 부위라서 생긴 말이라는 게 홍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홍어는 바다의 대단한 ‘정력가’로 알려져 있다.

100년 새에 세번째로 따뜻한 겨울이라 해도 겨울은 겨울이다. 운동을 끊고, 술과 담배로 몸이 무거워져 있다면 오늘 동네 친구 만나 홍탁에 막걸리 한잔 하고 슬슬 산책 한번 하시길 권한다. 그러면 정신이 번쩍, 몸은 가벼워지는 저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