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남(秋男), 추녀(秋女)를 유혹하던 가을 바다의 ‘고독 모드’는 이미 때를 다했다. 대부도, 제부도, 영흥도로 이어지는 겨울 바다의 ‘낭만 모드’가 연인들의 연애 감정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뭍과 섬의 경계에 있는 이들 섬에서 즐기는 로맨틱 여행.
대부도
뭍으로 다리 뻗은 섬 드라이브
대부도를 위시한 시화 지구 일대 섬 여행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떠올리게 한다. 소년이 물장난하던 소녀를 만났던 징검다리처럼 대부도, 선재도, 영흥도, 선감도, 불도, 탄도가 바다 위로 길을 내고 있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대부도가 시화방조제와 탄도방조제라는 두 개의 방조제로 뭍과 직접 연결되어 있고, 다섯 개의 작은 섬들을 새끼처럼 좌우로 거느리고 있다.
여행은 어미 섬 구실을 하는 대부도에서 시작된다. 물론 대부도 여행의 시발점은 시흥의 오이도와 대부도를 잇는 시화방조제다. 11.2km의 시화방조제 길은 바다 위로 생긴 멋진 드라이브 코스로, 차창 밖으론 아늑한 수평선과 짙은 초콜릿색의 갯벌이 그림처럼 스친다.
방조제를 건너 대부도에 다다르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은 방아머리선착장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대부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덕적도와 자월도 가는 카페리가 뜨는 간이 여객항인 방아머리선착장은 작지만 활기로 가득 찬 곳.
널따란 갯벌 위로 바지락칼국수에 조개구이 간판을 내건 횟집들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갯벌과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을 바라보며 조개구이나 칼국수를 먹으면 생생한 서해의 겨울 체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바다 쪽으로 시원스레 창이 나 있는 식당을 선택하면 저녁 무렵 웅장하게 펼쳐지는 서해 낙조도 볼 수 있다.
방아머리선착장을 나와 대부도 안쪽으로 들어가면 길은 섬 내륙으로 이어진다. 논밭 한가운데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마을과 작고 그림같이 예쁜 구봉도 해변을 지나면 길은 옹진군의 막내 섬 선재도를 달린다.
550m 길이의 선재대교로 대부도와 연결된 선재도는 목도(향도라고도 불림)와 측도라는 비경을 간직한 간이섬으로, 대부도 안쪽 길과 달리 길 옆으로 바다를 끼고 있어 눈이 즐겁다.
선재도를 뒤로하고 2001년 육지가 된 영흥도로 향하면 시화 지구 일대 섬 여행의 서쪽 끝인 영흥도의 관문 영흥대교가 객을 맞는다. 큰 기둥 두 개에 많은 와이어가 연결돼 다리를 받쳐든 영흥대교는 아름다운 야경을 선보이는데, 다리 밑으론 고깃배들이 끊임없이 지나간다.
영흥대교 아래 진두선착장을 지나 3km 가량 더 달리면 십리포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자갈밭 해변을 배경으로 서어나무의 뼈 같은 나뭇가지가 이국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십리포해수욕장은 한적한 겨울 바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해변 여행지다.
십리포해수욕장을 나와 서쪽으로 길을 잡으면 장경리해수욕장과 용담리해수욕장이 차례로 나타난다.
노송 지대가 1만 평에 달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손꼽히는 장경리해수욕장은 서해 낙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십리포해수욕장과 임도로 이어져 있다.
장경리해수욕장~통일사~국사봉~십리포해수욕장을 잇는 임도는 특히 영흥도의 ‘알려지지 않은 보물’로 비포장길이지만 인천 앞바다와 자월도, 시화호가 한눈에 들어와 가슴이 시원해진다.
용담리해수욕장 인근의 드넓은 갯벌과 함께 길은 다시 영흥대교와 선재대교를 지나 원점인 대부도로 돌아온다. 여기서 객은 대부도를 빠져나가도 되고 남양반도 끝에 있는 제부도로 가도 좋다.
시간이 여유 있다면 고민할 것 없이 선감도와 불도, 탄도를 지나 바닷길 하얗게 열리는 제부도로 향할 일. 시화호가 생기면서 선감도, 불도, 탄도 일대 갯벌은 죽었지만 그 자리를 황금빛 갈대가 빼곡히 채우고 있어 얕은 햇살 내리는 겨울 오후면 바다처럼 눈부시게 빛난다.
제부도
꽃 피듯 열리는 바닷길 산책
제부도에서만 ‘바닷길’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곳 일대에서 ‘바닷길 열림 현상’을 볼 수 있는 곳은 누에섬, 목도, 측도 등 무려 네 곳에 이른다. 그중 대부도와 형제처럼 인접한 제부도가 2.3km로 가장 긴 바닷길을 자랑한다.
썰물 때면 하루 두 차례 하얗게 드러나는 제부도의 시멘트 찻길은 서하진의 소설 <제부도>를 떠올리게 할 만큼 신비로우면서도 비극적인 상상을 동반하는데, 갯벌에 묻힐 듯 말 듯 구불구불한 길 너머로 갯내 물씬한 제부도가 어른거린다.
맑은 날보다 짙은 안개비가 내리는 날이나 굵은 소낙비가 쏟아져내리는 날, 하얗게 눈 날리는 날 그곳에 서면 제부도 바닷길의 피안 같은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만다. 달빛에 맨몸을 하얗게 드러낸 바닷길도 신비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바닷길을 걸어서 들어간 제부도는 소설이 주는 그 아스라한 상상의 아름다움과 낭만에는 미치지 못한다. 월미도를 옮겨 놓은 것처럼 횟집과 모텔 일색인 제부도. 끝없이 이어지는 갯벌과 매바위의 절경이 아니라면 바닷길만 건넌 후 다시 돌아오고 싶어진다.
제부도 일주는 ‘순환도로’에서 하게 되는데, 바닷길 끝 삼거리에서 우회전하건 좌회전하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대개 선창가에서 해수욕장을 지나 최고 볼거리인 매바위까지 달린다.
해수욕장 주변에 차를 세워두고 부드러운 진흙을 발가락 사이로 느껴볼 시간 여유가 없다면 선창에서 해안을 따라 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해안 탐방로’를 걸어보는 것도 좋다. 밀물 때는 발밑에서 하얀 포말의 파도가 철썩이고, 썰물 때는 발아래로 초콜릿색 갯벌이 깔린다.
제부도 선창 앞에서 가까이 보이는 누에섬에서도 ‘바닷길’이 만들어진다. 누에를 닮았다 하여 누에섬이라 불리는 이곳은 탄도에서 진입할 수 있는데, 잿빛 보도가 거의 직선으로 나 있어 제부도에 비해 운치는 떨어진다.
탄도를 지나 대부도를 경유해 선재대교를 넘으면 서해안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예쁜 갯마을 선재도가 나타난다. 물이 빠지면 길이 열리는 두 개의 섬이 바로 선재도의 보물인데, 선재도 초입의 목섬은 손때 묻지 않은 무인도로 썰물 때면 살결 고운 모랫길이 하얗게 드러난다.
왕복 1km 정도의 작은 바닷길이지만 물 빠질 때까지 연인 둘이서만 비경을 독차지할 수 있어 로맨틱 데이트 코스론 최적. 목섬 너머로 보이는 측도도 선재도의 ‘바닷길 보물’ 중 하나다. 열한 가구가 사는 측도는 원래 칡넝쿨이 많아 ‘칡도’라 불리는 곳.
제부도 인근 바닷길 중 최고의 풍광이라고 할 만큼 물이 빠지며 드러나는 자갈길이 예쁘다. 특히 저녁이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로등이 바닷길의 로맨틱 무드를 최고조에 달하게 한다.
하지만 시화 지구 일대의 섬은 어느 곳을 막론하고 주말 한낮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북적이는 인파를 피해 한적한 겨울 섬의 여로를 즐기고 싶다면 늦은 오후나 밤에 바닷길을 달려보는 것도 둘만의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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