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땅과 깊은 산. 그리고 광활한 바다와 황토빛 강. 이 모든 것이 한데 비벼지고 섞여서 풍경을 만들어내는 곳. 그곳이 바로 전북 부안입니다. 부안에는 끝간 데 없는 간척지의 너른 논들이 있고, 장대한 암벽을 드러내고 선 내변산이 있습니다. 또 너른 개펄을 안고 있는 외변산의 거친 바다가 있고, 황토빛으로 유장하게 흘러가는 동진강도 있습니다. 산과 들 그리고 강과 바다. 부안에서는 이렇듯 다른 것끼리 만나서 서로 화해하며 어우러집니다.
부안의 변산반도 바다는 거칩니다. 오밀조밀한 서쪽의 다른 바다와는 아주 다르지요. 삼면이 바다인 탓에 파도와 바람이 많습니다. 채석강의 날선 벼랑이나 적벽강의 울퉁불퉁한 단애도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끈끈한 개펄을 안고 있는 바다도, 개발이 늦은 탓에 더러 보이는 누추한 모습도, 흑백 사진처럼 입자가 굵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부안은 홀로 길을 나선 여행자에게 더 어울립니다. 부안의 바다는 각박한 삶에 지칠대로 지친 도회지 사람들의 어깨에 위안의 손을 얹기도 하고, 싸움에서 지고 돌아와 초라한 모습으로 바다 앞에 선 여행자들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한답니다. 자신의 실패를 반추해보거나 새로 시작하는 삶에 용기를 얻고자 한다면, 부안이야말로 더없이 잘 어울리는 목적지인 것이지요.
부안의 여름바다를 한마디로 간추려보자면 ‘펄떡거리는 생명력’쯤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부안의 해수욕장들은 선탠과 비키니의 바다라기보다는, 넘실거리는 파도를 마주하거나 뻘밭을 뒹굴면서 온몸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바다에 가깝습니다. 부안의 바다는 다른 바다보다 훨씬 더 짠 듯합니다. 같은 개펄이라도 부안의 것은 더 차진 느낌입니다. 아마 부안의 노을이 다른 곳보다 유난히 핏빛이 짙고, 장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이제 휴가의 절정기로 들어섰습니다. 마치 ‘워터파크’처럼 맨들맨들 가꿔진 ‘낭만의 바다’를 찾는 것도 좋겠지만, 펄떡거리는 자연의 거친 입자를 가진 격포의 바다에 다녀오시면 어떻겠습니까. 둥글게 휘어진 모래톱과 함께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싱싱한 개펄을 품고 있는 모항의 바다를 찾아도 좋고, 채석강이나 적벽강에서 바위 단애를 때리는 파도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부안에서는 내변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내소사로 드는 전나무 숲길은 이즈음 짙은 녹음으로 어둑하고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직소폭포 아래 산중호수의 이국적인 정취도 여름이 아니고서는 이렇듯 감동적이지 못할 겁니다.
부안의 내변산에는 또 조선시대 황진이에 견줄 만한 명기(名妓) 매창의 이야기가 따라옵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인들과 어깨를 겨룰 정도로 시에 능했다던 그는 평생 한 남자를 그리며 주옥 같은 시편들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으로 시작하는 매창의 시는 빼어난 절창입니다. 내변산의 월명암에도, 날아갈 듯 유려한 처마를 이고 있는 개암사에도 매창의 자취가 어려 있습니다. 휴가길에 매창의 시집 한 권쯤 배낭에 넣어간다면, 아마 부안으로 향하는 여정이 더욱 풍성해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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