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매봉산 정상의 풍력발전 단지와 고랭지 채소밭. 끝없이 펼쳐진 짙푸른 배추밭과 하얀 풍차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빚어낸다.
전망대에서 서서 서늘한 산바람을 맞으며 이 정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늦더위를 절로 잊게 된다.
기상청에 물어봤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에 가장 시원한 곳이 어디냐고. 한라산 꼭대기도 서늘하고 대관령도 쾌적하지만, 도시 규모를 갖춘 곳 중에서 기온이 가장 낮은 곳은 강원도 태백시란다. 평균 해발고도 700m가 넘는 고원도시 태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여름에 폭염특보가 단 한 차례도 발령되지 않았고 열대야도 전혀 없었다.
입추와 말복도 지나고 8월 중순으로 접어들었지만,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는 여전히 숨이 턱턱 막힌다. 아직 피서를 못 떠나고 여름 내내 도시의 가마솥더위에 시달렸다면, 우리 땅에서 가장 시원한 태백을 찾아 몸과 마음을 추슬러 보는 건 어떨까. 그렇다고 태백의 특장을 시원함에서만 찾을 일은 아니다. 백두대간 한가운데에 자리한 태백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다양한 볼거리가 넘쳐난다.
# 풍력발전단지와 고랭지 채소밭
38번 국도를 타고 정선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다 두문동재(1010m)에 접어들면서 차 안의 에어컨을 꺼 버렸다. 반쯤 열린 차창밖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싱그럽고 상쾌하다.
두문동재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매봉산의 풍력발전단지. 8기의 하얀 풍차가 산 위에 우뚝 서 있다. 매봉산 정상에 오르려면 35번 국도로 갈아타고 삼수령까지 가야 한다. 이곳에 떨어진 빗방울이 세 갈래로 나뉘어 한강·낙동강·오십천으로 흘러간다는 삼수령의 맞은편 산길로 한참을 올라가니, 매봉산 정상(1303m) 일대에 짙푸른 배추밭이 펼쳐져 있다. 면적이 132만㎡(40만평)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랭지 채소단지다. 그 위에서 힘차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광고 화면에서나 볼 수 있는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풍광이다. 전망대에서 서니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을 감싼다. 내 안에 가득 찼던 도시의 후텁지근한 기운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리는 듯한 기분이다.
# 구와우 마을의 해바라기 축제
삼수령 부근 황연동의 구와우 마을. 주변 지세가 ‘아홉 마리의 소가 누운 형상’이라고 해서 이같이 불린다. 여름이면 구와우 마을은 온통 노란색 물결로 뒤덮인다. 16만5000㎡(5만여평)에 달하는 산구릉 전체에 해바라기꽃이 가득하다. 이 광활한 해바라기밭은 고원자생식물원의 김남표 원장(44)이 2002년부터 일구기 시작했고, 축제는 2005년부터 시작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강렬하고 화려한 해바라기꽃 군락은 단번에 태백의 여름철 명물로 자리 잡았다.
구릉 전체를 노랗게 물들인 구와우 마을의 해바라기
5월 말에 파종한 해바라기꽃은 당초 8월 초에 만개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올해는 비가 많았던 탓인지 개화가 늦었고 요즘에서야 절정을 맞고 있다. 2차 파종한 해바라기는 9월 초까지 꽃빛이 화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곳엔 해바라기만 있는 게 아니다. 전체 규모가 39만6000㎡(12만평)에 달하는 식물원에는 500여종의 자생식물이 자라고 있다. 김 원장은 LP판 5000장도 보유하고 있다. 주말 저녁에는 해바라기 꽃밭에 앉아 LP판에서 흘러 나오는 선율에 젖어볼 수도 있다. 올 축제는 8월 31일까지 진행된다.
# 기세등등한 삼형제 폭포의 물길
태백 시내에는 깊은 산속에서나 있을 법한 폭포와 계류도 자리하고 있다. 황지연못에서 발원해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황지천을 따라 31번 국도를 타고 경북 봉화 쪽으로 달리면 거대한 구멍이 뚫린 바위산을 만나게 된다. 바로 구문소다. 바위산의 높이는 20∼30m에 달하고, 구멍의 직경도 5m는 족히 되어 보인다. 구문소도 장관이지만, 더위를 식히는데는 구문소 바로 위의 삼형제 폭포가 더 유용할 듯싶다. 세 자락의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이 합쳐져 다시 하나의 폭포를 거쳐 구문소로 흘러드는데, 그 기세가 대단하다.
으르렁대며 쏟아지는 삼형제 폭포의 위용을 보면, 황지천의 거센 물길이 석회암으로 이뤄진 산을 뚫어 구멍이 생성됐다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대번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초겨울 날씨 경험하는 용연동굴
여름에 피서하기 가장 좋은 곳 중 하나가 동굴. 태백의 용연동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920m)에 자리한 동굴이다. 동굴에 들어서는 순간 한기가 온 몸을 파고들어 관광객들이 이구동성으로 “춥다”며 몸을 움츠린다. 용연동굴은 종유석과 석순 등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곳곳에서 분수 쇼가 펼쳐진다. 매표소에서 출발해 10분 정도 산길을 오르는 열차도 운치가 있으며, 동굴 입구에는 야생화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다. 25일까지는 오후 9시까지 야간개장을 한다.
8월 중순 이후 태백 여행에 나선다면 주의할 게 몇 가지 있다.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니 꼭 긴팔 옷을 준비해야 한다. 태백은 8월 초에도 밤 기온이 18도까지 내려간다. 또 한낮이라도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같은 깊은 계곡의 물에 함부로 뛰어들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온 몸이 오들오들 떨려 황급히 햇볕을 찾아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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