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한 동식물의 세계/식물

봄철 입맛 돋우는 채소 '미나리'

Sosahim 2009. 2. 14. 17:54

 

봄철 입맛 돋우는 채소로 미나리를 빼놓을 수 없다. 향과 맛이 독특해 입맛 없을 때 식욕 살리기에 제격이다.

지금이야 사시사철 무쳐도 먹고 매운탕에도 넣어 먹지만 예전에는 봄이 오면 별미로 미나리 김치를 많아 담가 먹었다. 멸치 젓국을 넣고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으로 양념해 미나리와 당근을 넣고 버무린 미나리 김치는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향이 오래 남아 특히 경상도와 전라도의 봄철 별식으로 꼽힌다.

사람들의 입맛이 변했는지 지금은 미나리가 항상 밥상에 올라오는 채소가 아니지만 옛날에는 달랐던 모양이다. 요즘은 김치라고 하면 배추김치가 대세지만 예전에는 봄철 김치로는 미나리 김치를 꼽았다.

옛날 김치는 미나리로 담갔다

사실 우리 민족이 배추김치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이 조선 말기부터니까 그 이전에는 다른 김치를 먹었을 터인데 그 중 하나가 미나리 김치다.

그 만큼 미나리가 흔했다는 이야기인데 옛 문헌을 보면 사대부나 농부 할 것 없이 집집마다 미나리를 키웠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한치윤이 쓴 해동역사라는 책에 “왕도(서울)와 개성 사람들은 모두 집의 작은 연못에 미나리(芹)를 심는다”고 했다.

집집마다 미나리를 심은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많이 먹었던 채소였음이 분명하다. 조선왕조실록 중 세종실록을 보면 제사를 올릴 때 미나리 김치를 두 번째로 진열해야 한다는 대목이 보인다.

그러다 보니 미나리는 궁중음식으로 또 절식으로 발달했다. 미나리를 이용해 만든 대표적인 궁중음식 중 하나가 ‘미나리 강회’다.

조선말 요리서인 시의전서에는 미나리를 다듬어 끓는 물에 데쳐 상투 모양으로 도르르 감고, 달걀 지단 석이버섯 붉은 고추 양지머리 편육을 채치고 실백을 가운데 세우고 다른 잔 재료를 옆으로 돌려가며 색색이 세워서 미나리로 감아 접시에 담고, 초고추장을 곁들여 먹는다고 했다. 그리고 미나리를 감는 형태를 궁중에서는 족두리 모양으로 감고, 일반 가정집에서는 상투 모양으로 감는다고 했는데 ‘미나리 강회’는 특히 초파일에 먹는 절식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살생을 하지 않기 위해 육류나 어류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반드시 소찬(素饌), 즉 채소를 중심으로 먹는데, 제철인 미나리로 장식을 한 ‘미나리 강회’를 먹었다.

미나리를 바치는 정성

궁중이나 사대부 집에서 미나리를 즐겨 먹었던 또 다른 이유는 미나리가 충성심과 인재를 상징하는 채소이기 때문이다.

고사성어에 ‘미나리를 바치는 정성’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로는 ‘야인헌근(野人獻芹)’이라는 말이 있다. 혹은 헌근(獻芹) 또는 근폭(芹曝)이라는 말도 많이 쓰인다.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을 조롱하는 말로도 쓰이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왕을 먼저 생각하는 충성심을 나타낼 때는 말로도 쓰인다. 열자(列子) 양주(楊朱)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옛날에 한 농부가 있었다. 그런데 미나리를 먹어 보고는 너무 맛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을에 사는 부자에게 자기가 맛있다고 생각한 미나리를 바쳤다. 미나리를 맛 본 부자가 맛이 없다며 그것을 바친 농부를 비웃었다. 또 송나라 때 한 농부가 추운 겨울에 햇볕에 몸을 쪼이니 너무 따뜻했다(曝). 추운 겨울 햇볕의 따스함이 신기했던 농부가 아내에게 이 좋은 것을 아무도 모르니 임금님께 알려드리면 반드시 큰 상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밭을 가는 농부가 미나리를 상납했다는 ‘야인헌근’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고, 미나리와 햇볕이라는 근폭(芹曝)이라는 고사성어의 어원이 되는 이야기다.

“미나리를 뜯는다(菜芹)”는 고사성어도 있는데 이 말은 인재를 발굴한다는 말이다.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이다. 반수(泮水)라는 연못에서 미나리를 뜯는다는 노래가 나오는데 훗날 수 많은 사람 중에서 훌륭한 인재를 뽑아 학생으로 삼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인재발굴이고, 인재중용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근궁(芹宮)이라는 말도 생겼는데 말로는 궁전(宮)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사실은 미나리 밭이고, 그래서 인재를 키운다는 뜻에서 학교를 의미하는 말이 됐는데 옛날로 치면 태학(太學) 혹은 성균관을 뜻하는 말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