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쿠푸왕 피라미드 이집트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는 모두 제 4왕조(B.C. 2600 ~ B.C.2480)에 만들어진 것으로 가장 큰 것은 쿠푸왕의 피라미드이다. 높이가 무려 148미터에 이른다고 한다(현재는 137미터). 피라미드를 만드는데 사용된 돌은 무려 230~250만개. 돌 하나당 무게는 2.5톤이나 나간다. 이런 돌로 돌집을 쌓으면 무려 12만명이나 수용할 수가 있다고 함.
바빌론의 왕이였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메디아 왕국의 키약사레스 왕의 딸 아미티스를 왕비로 맞았다. 녹음으로 우거졌던 메디아에서 자란 왕비는 평탄하고 비가 잘 오지 않아 황량한 바빌론으로 시집오자, 항상 아름다운 고향의 푸른 언덕을 그리워하였다. 이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왕이 왕비를 위하여 메디아에 있는 어떤 정원보다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높이 20미터 정도의 백색의 대리석을 깎아, 127개의 기둥을 이오니아 식으로 세우고 지붕을 이어 만들었다. 하지만 기원전 356년 10월,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자가 후세에까지 유명해질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고의적으로 이 신전에 불을 질렀다(덕분에 후세에까지 이름이 남아있긴 하다). 신전이 불타버리자 에페수 사람들은 재건에 착수하였는데 이때 그 곳에 살던 여인들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석 등의 귀금속을 팔았고, 각지의 왕들은 기둥을 기증하기도 하였다. 에페수스인들은 복구 사업을 하며 그 당시 가장 훌륭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시전보다 2배나 더 크고 아름다운 신전으로 만들려고 마음먹고, 파르테논 신전이 높이 10미터 대리석 기둥 58개를 사용한 점을 감안하여 높이 18미터짜리 기둥을 127개나 사용하여 만들었다. 기원전 250년경에 완성되자 그 규모의 화려함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화려한 신전이 세워지고 그를 보기위해 관광객들과 상인이 몰려들어 영화를 누르던 에페수스시에 기독교의 물결이 밀려왔다. 우상 숭배를 금했던 초기 기독교인들과 에페수스인들과의 마찰은 당연히 일어날 수 밖에 없었고, 사도 바울도 이곳에서 우상 숭배를 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에페수스 사람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기원 후 260-268년에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해온 고트족들에 의해 신전은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
당대 제일의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만든 제우스 신상으로 높이 90cm, 폭이 6.6미터인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신상의 높이는 무려 12.4m로 천장에 닿아 있었다. 426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교신전파괴령에 의해 신전이 헐리고, 그 후 지진과 하천의 범람으로 신역이 3-5미터 아래 모래층에 매몰되어 오늘날에는 남아 있지 않다.
그 기념으로 36m짜리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청동상을 세우게 된다. 알려지기는 한손으로 눈을 가리고 항구 입구에 양다리를 벌리고 서 있었다고 하지만 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 거상은 BC 225년경 지진에 의해 파괴되었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건축가 피테우스와 예술가 스코파스, 브리악시스, 레오카레스, 티모테우스 등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거의 정사각형으로 지어진 이 묘는 그 둘레가 125m에 이르렀다고 한다. 훗날 지진으로 파괴된 것으로 보이며 남아있는 돌은 그 지방의 건물을 짓는데 다시 사용된 듯 하다.
이 등대의 꼭대기의 전망대에서는 수십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었고 램프의 뒤쪽 반사경으로 비치는 불빛은 43km나 떨어진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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