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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스 ‘의혹 투구’

Sosahim 2006. 10. 24. 09:15

 

눈부신 호투뒤에 미스터리가 남았다. 케니 로저스(42.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투구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로저스는 23일(한국시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 2차전 선발투수로 나와 8이닝 동안 무실점 역투, 팀의 3-1 승리를 이끌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로써 로저스는 과거 부진(3패, 20⅓이닝 20자책)을 털고 무려 포스트시즌 23이닝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게 됐다.그러나 중계를 맡았던 FOX-TV는 1회초 로저스의 왼손 엄지손가락 안쪽에 묻어있는 이상한 이물질을 여러차례 클로즈업했다. 로저스는 이후 2회부터 손을 씻고 나와 8회까지 변함없는 완벽투를 뽐내 논란을 잠재우는 듯 했다. 그러나 ESPN과 SI를 비롯한 현지 언론은 경기가 끝난 현재도 여전히 로저스에 대해 강도 높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로저스 의혹 투구’의 쟁점은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 쟁점1: 이물질을 발견한 심판은 로저스를 왜 퇴장시키지 않았나가장 먼저 수면위로 떠오르는 의혹은 이물질을 발견한 주심 알폰소 마르케즈가 왜 로저스를 퇴장을 시키지 않았나라는 점이다. 메이저리그 야구규칙 8.02(a)(4)에 따르면 공에 외부의 이물질을 발라 투구했을때 투수는 즉각 퇴장당하는 동시에 10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는다. 단 이 조항에는 ‘투수의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아 투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심판이 판단할 때는 경고만 주고 경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예외가 있다.

이에 대해 ESPN은 2차전 상황은 언급된 조항의 단서를 적용해 심판이 로저스를 퇴장시키지 않은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심판은 세인트루이스 측의 항의를 받아들여 사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정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손을 씻으라는 지시를 로저스에게 할 필요 없이 세인트루이스 측에 납득할 수 있는 자세한 설명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확한 판정의 근거는 전혀 없이 이후 경기는 묻어가듯 진행됐고 그걸로 끝났다.

만약 심판의 판단이 잘못돼 외부의 이물질로 판명, 벌칙 조항을 적용할 경우 로저스는 2이닝부터 마운드에 서지 못하며 앞으로 잔여 월드시리즈에도 나올 수 없었다. 이는 2차전을 비롯한 시리즈 전체 향방을 뒤바꿀 만한 중대한 결정이다.

# 쟁점2: 외부 물질인가? 자연 현상인가?그렇다면 갈색얼룩이 묻은 이물질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로저스는 “흙과 로진 가루가 섞인 것이다.”라며 혐의를 일축했고, 심판 감독관인 스티브 팔레르모 또한 “어느 심판도 특별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외부 물질은 아니었다”라며 로저스의 의견을 뒷받침 했다.

반면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핵심은 시작부터 로저스의 손에 이물질이 있었다는 점. 이날 경기가 벌어진 코메리카파크는 관중들이 두꺼운 외투를 입을 정도로 추운 날씨였으며 로저스 역시 입김을 불 만큼 손이 차가웠다. 그러나 로저스는 초구를 던질때부터 왼손의 얼룩이 포착됐는데, 과연 손이 마른 상태에서 이토록 빨리 끈적거리는 뭉침 현상이 가능할까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일반적이다.

더구나 심판과 감독관은 어떠한 부정의 증거도 없다고 했지만 이는 ‘단순 육안’에 의한 판단, 그 이물질을 채취하지도 않았고 정밀한 검사 역시 없었는데 이 부분도 크게 지적되고 있는 문제. 팔레르모 역시 공식적인 조사는 하지 않았음을 시인했으며 아직까지도 물질에 대한 정확한 해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쟁점3: 로저스 진실게임..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나?경기 후 로저스는 “손에 이물질이 남아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그래서 곧바로 씻어냈고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로저스는 이후 기자들이 심판이 얼룩을 제거하라는 지시가 있었냐는 질문에 “그런 지시는 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한 어떤 통보도 없었다”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심판의 말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그것은 주심 마르케즈가 2이닝이 시작되기 전 로저스에게 다가가 무언가 언급을 하는 모습이 분명히 화면이 잡혔고, 2회부터 로저스 손의 얼룩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로저스의 주장은 이물질이 없어진 원인이 자의인가 타의인가라는 점에서 여전히 명백하지 않으며 왜 반대되는 의견을 피력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남기고 있다.

# 쟁점4: 8이닝 호투가 면죄부는 아니다? 처음이 아닌 반대 개연성의 문제로저스가 얼룩 논란을 잠재운 원인은 이후에도 뛰어난 피칭을 보였기 때문이다. 얼룩을 지워도 호투했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로저스 옹호론이 많은 부분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무대는 월드시리즈다. 200개가 넘는 국가에 중계되며 20억이 넘는 인원이 시청하는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에 만약 속임수가 있었다면 이는 부정의 존재 자체가 초점, 스포츠맨십을 기만했다는 측면에서 이후의 호투가 완전한 면죄부를 얻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로저스의 이물질은 이번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만 발견된 것이 아닌 디비전시리즈와 챔피언십시리즈에서도 똑같은 위치에 동일한 얼룩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로저스가 얼룩 자체를 몰랐다는 점, 이물질에 의해 반사적인 이익을 얻었느냐 아니냐는 것은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이는 배리 본즈가 약물 파동이후 홈런을 못치면 약물 때문에 그랬고, 홈런을 치면 약물때문이 아니었다고 산발적으로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 ESPN 칼럼니스트 진 워지초프스키가 밝힌 것처럼 “로저스가 6차전에 나와 호투하지 못하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건가”라는 지적과 동일선상이다.

더구나 로저스는 지난해 6월 30일 취재 중인 방송 기자를 밀치고 카메라를 빼앗아 던지는 과격한 행동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는데, 카메라를 빼앗긴 기자는 허리와 목 통증을 호소했고 로저스는 13경기 출장정지를 당하는 등 이후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이번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단순한 우연일까.

한편 경기 직후 ‘로저스가 부정투구를 했다고 생각하나’라는 ESPN의 여론조사(24,828명)에선 60.5%의 다수 의견이 ‘그렇다’고 대답해 현재 증폭되고 있는 의혹의 분위기를 대변했으며, 심지어 Hyperspace같은 미국 네티즌은 NBC를 통해 “로저스는 시즌 전체를 속였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