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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 '빙계계곡'

Sosahim 2008. 9. 6. 20:22

 

경북 8승의 하나로 얼음구멍과 바람구멍이 있어 빙산이라 하며,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를 빙계라 하고, 동네를 빙계리라 부른다.

삼복 때 시원한 바람이 나오며 얼음이 얼고, 엄동 설한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신비의 계곡으로 빙계(氷溪) 3리 서원(書院)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용추, 물레방아, 바람구멍, 어진바위, 의각, 석탑, 얼음구멍, 부처막을 빙계팔경이 라 하며, 계곡 안쪽에 자리한 보물 제327호 오층석탑은 높이 8.15m의 대형탑이며,화강석으로 조성된 고려초의 석탑이 있다.

마을 건너편에 수십 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그 아래 맑은 시냇물 가운데 우뚝 솟은 크고 작은 무수한 바위는 1933년 10월 4일 경북도내 경북팔승의 하나로 뽑혔으며, 계곡 가운데 돋보이는 높이 10m, 둘레가 20m 정도의 유난히도 큰 바위에 빙계동(氷溪洞)이란 커다란 글씨가 새겨진 건 임진난 때 여기 들른 명장 이여송(李如松)의 필적이란 얘기도 있다.

그 옆에 단 하나의 큰 바위 위에는 경북 팔승지일 이라고 새긴 아담한 돌비(石碑)가 자리잡고있다.

 

빙계계곡의 유래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氷溪里) 속칭 서원리(書院里)의 빙계서원이 자리하고 있는 계곡에는 크고 작은 암석이 개울바닥과 둘레의 산기슭에 즐비하고 그 바위틈 사이로 여름에는 얼음이 얼고 찬바람이 나오며 겨울에는 반대로 따뜻한 바람이 나올 뿐만이 아니라 경치가 좋아 최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운영되는 곳으로 멀리서부터 오는 관광객이 봄, 여름, 가을 세철은끊일 새가 없으며 이것은 사방 10m나 되는 넓적한 바위에 새겨진 "慶北八騰之一" 비석으로 미루어서도 쉽게 짐작이 간다. 이 계곡이 생기게 됨에는 적잖은 파란이 있었음을 전하는 얘기가 있다.

아득한 옛날에 힘센 장수와 큰 용이 산중에서 개울을 내기로 의논하였는데 용은  서쪽으로 장수는 북쪽으로 낼 것을 주장하였으므로 서로 뜻이 맞지 않아 다투다가  결국 힘내기를 하여서 서로 빨리 산맥을 끊어서 내(川)를 만든 쪽이 자기 주장을 관철하도록 하였다. 용은 꼬리를 쳐서 서쪽 산맥을 끊기로 하고 장수는 쇠스랑으로 북쪽을 찍고 산맥을 끊기로 하여 서로가 힘으로 대결하였다.

용은 끝까지 꼬리와 몸을 움직여서 서쪽 산맥을 끊어 하천을 내는데 성공하였으나 그만 용의 머리를 바위에 부딪히는 바람에 개울에다 큰 소(沼)를 만들었다 하여 이곳을 용소(龍沼) 또는 용추라고 전해지며 힘센 장수는 너무 급히 쇠스랑으로 북쪽 산맥을 찍다가 자루가 부러져서 그만 개울을 북쭉으로 내지 못하고 용에게 지고 말았다고 한다. 북쪽 능선에는 쇠스랑에 찍힌 자국이 지금도 남아있으며 그때 깨어진 바위라 하는 많은 바위들이 흩어져 있다. 한편 웅덩이었던 자리가 지금의 마을이 되었다는 전설과 함께 그 때 북쪽으로 내를 낼려고 용과 싸운 것은 장수가 아니고 부처라고도 하는데 그래서 부처가 쇠스랑으로 찍은 자국을 부처막이라고 이곳 주민들은 부르고 있다.

부처막은 빙계 팔경중 제 7경에 들고 용의 머리를 부딪친 용소는 제 8경에 들며 개울을 낸 용이 등천할 때 만들어졌다는 용로가 개울부터 산정까지  뻗쳐있다.

여름철 7월과 8월에는 300원에서 1,000원 사이의 입장요금을 징수함.

 

빙혈(氷穴)

마을 뒷산 산기슭의 바위 아래 너덧 명이 들어 설수 있는 방한칸 만한 넓이의 공간이다.

여기선 입춘(立春)이 되면 찬 기운이 나고 한여름엔 얼음이 얼어 있다. 입추(立秋)가 지나면 차차 녹아 동지(冬至)에는 볼 수 없고 훈훈한 바람이 나온다. 

 

 

 

 

 

 

 

 

풍혈(風穴)

동구 도로 변 바위와 바위 사이에 뚫린 좁고 깊은 곳으로 여름엔 찬바람이 나오고, 겨울철은 훈훈한 더운 바람이 일고 있다.그 근방 크고 작은 바위 사이엔 거의 같은 현상이 일어 나는 편이다.

 

 

 

 

 

 

 

석탑(石塔)
 

빙산사 구지(氷山寺 舊址)에 당시(신라말 내지 고려초) 이뤄진 5층 모전(模塼) 돌탑으로 보물 327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