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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여신도 취하는 다도해의 보물섬 '거문도'

Sosahim 2009. 3. 8. 20:27

 

 

다도해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거문도는 여수항에서 쾌속선으로 2시간을 넘게 달려야 다다를 수 있는 먼 섬이다. 그래서 우리 땅 최남단 제주를 지나온 봄의 여신은 다도해를 징검다리 삼아 뭍으로 오르기 전 거문도에 가장 먼저 머물게 된다. 지금 이 섬엔 붉은 동백꽃, 노란 수선화, 보랏빛 제비꽃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창 뽐내고 있다.

 

제주도와 여수 사이에 있는 거문도(巨文島)는 제주해협을 거쳐 대한해협과 일본의 쓰시마해협을 잇는 해로의 중간에 있는 섬이다. 따라서 동북아 바다에서 이곳은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19세기 중엽 동북아에 눈독을 들이던 열강들도 거문도에 주목했다.

 

제일 먼저 영국. 1845년 영국함대는 거문도를 샅샅이 조사한 뒤 동북아를 공략할 때 해군기지로 알맞다고 여겼다. 이때 지어진 이름이 바로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 1866년엔 미국의 아시아함대도 5일간의 정밀탐사 뒤 역시 같은 결론 내렸다. 1878년 영국 실비아호 선장 존은 아예 이곳을 영국이 차지하자고 주장했고, 결국 1885년 4월 영국군은 군함 6척과 상선 2척으로 거문도를 무려 22개월이나 무단 점거하게 된다.

 

당시 영국이 이 섬을 점거한 명분은 부동항을 찾던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응한다는 것이었으나, 결국은 동북아에 거점을 확보하려는 야욕의 하나였던 것이다. 실제로 거제도는 동도ㆍ서도ㆍ고도 세개의 섬이 도내만(島內灣)이라 불리는 내해(內海)를 둥글게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먼 바다답지 않게 물결이 호수처럼 잔잔하다.

 

 

◆동백 원시림으로 뒤덮인 불탄봉

거제도엔 동백ㆍ풍란ㆍ후박나무 등 360여종의 다양한 아열대 식물이 분포하고 있는데, 이중에서 전체 수종의 70% 정도가 동백이다. 따라서 거문도는 섬 대부분이 동백림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서도의 불탄봉(195m)은 산 전체가 대부분 동백숲이다.

 

불탄봉 초입은 서도의 덕촌마을회관 앞. 고도의 여객선터미널에서 삼호교를 지나 서도로 들어선 뒤 오른쪽 해안도로를 따르면 곧 덕촌마을회관이 나온다. 그 앞엔 이곳 거문도 서도 출신으로 대한민국 초창기 해군 육성에 공헌한 박옥규 제독 송덕비가 있다.

 

 

이곳에서 거문중학교 뒤쪽의 KBS 송신탑을 지나면 본격 산길이 시작된다. 불탄봉 오르는 길은 동백숲이다. 그런데 단순한 동백숲이 아니라 수십, 수백년생 동백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밀림이다. 동백나무 사이로 나있는 산길은 동백잎의 진녹색으로 뒤덮여 어두컴컴하지만 여기저기 피어난 동백 꽃송이가 화사한 미소로 반긴다. 대부분 붉은 동백. 이따금 분홍 동백도 눈에 띈다. 또 숲 어디에선가 귀하다는 하얀 동백도 미소를 보내고 있으리라.

 

일제강점기 때 설치한 지하벙커가 남아있는 불탄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도내만은 세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쳐서 잔잔한 호수다. 먼 바다에 이토록 잔잔한 항구가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 조선 말기에 제국주의 열강이 동북아 진출의 교두보로서 군침을 흘렸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불탄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면 널따란 억새밭. 해풍에 억새가 누웠다 일어선다. 그 너머로 녹색의 동백숲이 다시 펼쳐져 있고, 아래로는 쪽빛 바다가 손짓한다. 산길 옆의 무덤가엔 수선화도 피었다. 바람 센 언덕에서도 꿋꿋한 수선화의 맑은 향내가 몸속으로 스며든다.

 

산길은 다시 동백숲으로 이어진다. 얼마 뒤 만나는 갈림길. 해안쪽으로 잠깐 빠지면 조망이 빼어난 전망대다. 왕복 20분 정도면 조망을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어린이들에겐 조금 험한 길이다.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다시 산길을 따른다.

 

유림해수욕장 갈림길을 지나면 산길은 짧은 오르막을 지난 뒤 왼쪽엔 동백숲, 오른쪽엔 아슬아슬한 해안절벽을 끼고 간다. 오른쪽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까마득하다. 이 일대를 주민들은 ‘기와집 몰랑’이라 한다. '몰랑'이란 산마루란 뜻의 전라도 방언이니, 이는 '기와집 형상의 산마루'란 뜻이다.

 

바위지대를 넘어서면 다시 동백숲이다. 산길엔 동백꽃이 가득하다. 떨어진 꽃송이가 등산화에 밟힐까 발길이 조심스럽다. 동박새 지저귀는 소리도 요란하다. 이번엔 해안에 우뚝 솟은 신선바위다. 조심스레 신선바위를 오르면 남성미 넘치는 거문도 해벽 너머로 저 멀리 새하얀 거문도 등대가 아련하다. 신선바위부터 보로봉 정상까지도 동백터널이다.

 

 

◆1905년 처음으로 불을 밝힌 거문도 등대

보로봉부터는 내리막이다. 파도가 센 날이면 바닷물이 넘나든다는 목넘이재(무넘이재). 여기서부터 거문도 등대까지는 해벽을 낀 1km 정도의 산책로가 펼쳐진다. 떨어진 동백꽃이 붉은 양탄자처럼 펼쳐진 동백터널을 지나면 거문도 등대. 1905년 4월5일 처음으로 불을 밝힌 거문도 등대는 올해로 104주년을 맞는다. 점등 100주년을 맞이한 지난 2005년 대대적으로 보수작업을 했는데, 옛 등대는 유물로 보존하고, 2006년부터 새로운 등대가 불을 밝히고 있다. 등대 한쪽엔 수선화가 곱게 피어 있다.

 

조망을 즐기려면 등대 옆의 정자 관백정에 오른다. 동쪽을 바라보면 머나먼 수평선에서 환영인 듯 솟은 섬들이 햇살에 하얗게 빛난다. 신비의 바위섬 백도다.

 

한편 역사에 기록된 ‘거문도 사건’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고도의 거문초등학교는 영국 해군 막사 자리. 영국군이 22개월간의 거제도 점거 기간 중 질병과 사고로 사망한 인원은 모두 9명인데, 이 중에 3명의 묘가 아직까지 그 뒤쪽 산기슭에 남아있다. 영국군 수병 묘지 가는 길은 예쁜 유채꽃길이다. 영국대사관 측에선 매년 4월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불탄봉의 본격 산행과 탐승을 곁들인 삼호교~덕촌마을회관~불탄봉~기와집몰랑~신선바위~보로봉~등대 코스는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이외에 가볍게 산책하며 동백꽃 탐승을 즐기는 유림해수욕장~기와집몰랑~신선바위~보로봉~유림해수욕장 왕복 코스는 2시간 소요, 노약자도 다녀올 수 있는 유림해수욕장~목넘어(무넘이)~등대~유림해수욕장 왕복 코스는 1시간 30분 소요. 여객선터미널~영국군 수병묘는 왕복 30~40분 소요.

 

 

◆여행정보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비룡분기점→중부고속도로(구 대전-통영간고속도로)→진주분기점→남해고속도로(광주 방면)→순천 나들목→17번 국도→순천→여수항 <수도권 기준 5시간30분 소요>

 

●배편 여수항→거문도=매일 2회(07:40, 13:40) 출항. 거문도→여수항=매일 2회(13:00 15:40) 출항. 요금(편도) 일반 3만6600원, 어린이 1만8300원.

 

●숙식 고도 여객선터미널 근처에 섬마을민박, 백도여관, 뉴백도여관, 뉴백도장여관, 동백여관, 시랜드모텔 등이 있다. 2인1실 기준 2만5000~3만원.

삼도식당, 섬마을식당 등에서 자연산 활어회를 맛볼 수 있다. 자연산 모듬회 6만원(4인 기준), 갈치조림(1인분 1민원) 등을 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