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 없는 웹에 저주파를 날리노라
아, 그리워라. 문득문득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시작하던 10년 전이 그리워진다. 10년 전에는 인터넷도 훨씬 느리고, PC도 그랬을 텐데,
오히려 지금의 컴퓨터가 더 버벅거리는 느낌이다. 그 주요한 원인은 광고, 프로그램, 콘텐츠를 주렁주렁 달고 무거워진 인터넷 사이트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불쾌감을 일으키는 것이 광고물이다. 퍽퍽 시야를 가리는 팝업창들, 두더지 잡듯 하나둘 닫고 나면 밑에 깔린 창에도 광고가
가득하다. 페이지를 열었는데 ‘플래시’(애니메이션이나 동영상 등 움직이는 페이지 기술) 광고가 뜨면서 사무실을 꽝꽝 울리면 ‘대략 난감’이다.
사운드를 끄거나 광고를 닫는 버튼을 찾아 ‘땀을 삐질’거리지만, 묘한 굴곡 속에 꽁꽁 숨겨놓아 한참이나 헤매야 하는 경우도 많다. 온갖
아이디어와 예술적 역량을 쏟아부은 결과가 결사적으로 피해야 할 무엇이 되는 것이다.
△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
소비자가 불편해하느니 내가 무릎 꿇고 기겠다는 ‘서비스 정신’이 제도화돼가는데, 첨단사회의 첨병이라는 인터넷에서는 몰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법인명 드러내고 멀쩡히 영업하는 사이트들도 사용자를 괴롭히는 환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매너 없는 사이트란 매너 없는 사람과
매한가지다. 한순간에 기분이 확 나빠진다. 매너란 결국 밸런스, 상대방을 얼마나 배려할지에 관한 이야기다. 봉이 되라는 것도 장사를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모처럼 찾아온 이를 기분 좋게 할지, 좋은 매너란 무엇인지 손님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매너#1: 광고는 노출만이 최고? 초짜의 생각이오
광고주와 광고대행사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면, 광고란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 보는 이에게 노출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기존 매체 광고의 역사처럼 깊지 못해서인지 웹 광고는 유치와 현란함만을 앞세운다. 광고 초짜들의 단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와이브로나 HSDPA 등 차세대 무선망은 지금의 정액제 초고속 인터넷이 아니라 일종의 종량제가 될 예정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성가신 광고는
모두 사용자의 이용료로 직결된다. 스스로 적잖은 돈을 내며 보기 싫은 광고를 봐야 하는 건 난센스다. 돈이 걸리는 문제가 되면 이제 사태는
매너의 문제만이 아니게 된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상식이라 생각해왔던 원칙이나 방식이 돈벌이를 위해서 바뀌는 일도 불쾌하다. 우리 현실 사회에서 곧잘 등장하던
‘급행료’가 가상 사회에선 정당한 돈벌이가 되어 있다. 포털들은 검색 질의어를 광고와 연계해 수익을 얻고 있다. 상식으로는 사용자가 찾으려는
사항이 가장 잘 검색이 되어야 하지만, 지금은 가장 돈을 많이 낸 사이트가 검색이 잘된다.
사실 대부분의 사이트를 공짜로 들락날락하는 입장이기에 광고는 기꺼이 봐줄 수 있지만, 노출된 콘텐츠가 편중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 특히
메신저를 통해 들어오는 소식들은 걸려들기 쉬운 연예 가십과 토픽성 기사들뿐이다. 그것이 수익 구조라면 무료 사용자로서 봐줄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원하는 뉴스나 광고를 고를 수는 있게 해줘야 한다.
매너를 지키면서 수익도 올리는 방법은 없을까? 역시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미국계 검색 엔진 구글이 네티즌들의 호감을 많이 사온 이유도
그러한 균형감각 덕이다. 적절한 곳에 끼워넣은 단 한 줄의 광고만으로도 엄청난 광고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을 구글은 가르쳐주고 있다.
* 매너#2: 표준은 기술이 아니라 상식이오
웹에서 표준을 말하면 그저 기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상식이다. 상식이 빠진 인터넷, 그 실상은 이렇다. 일단 윈도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쓰지 않으면 국내의 금융기관, 공공 서비스의 대부분은 이용이 불가능하다. 되는 듯싶다가도 결정적 순간에서 되지 않는다.
매너를 떠나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 거래를 위한 공인인증서 처리 프로그램이나 각종 보안 모듈들이 윈도와 익스플로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바로 액티브X. 무엇에 쓰이는지 알지도 못한 채 끊임없이 설치된다. 이 프로그램은 PC에 설치된 윈도에 어떠한 조작을 가능하게
하는 엄연한 프로그램이다. 다행히 윈도가 버전업이 되면서 설치 동의를 구해오고, 때로는 인증된 회사의 안전한 모듈인지 알려주기도 하지만, 당장
들어가야 하는 사이트에서 이걸 꼭 깔아야만 들여보내 준다는데 이것저것 따질 새가 없다. 그냥 예, 예, 뭔지도 모르고 까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대한민국에서만 유일한 일이다. 공공 영역과 금융계가 앞장서서 시장의 다양성을 죽여와서다. 이러한 와중에서
매킨토시, 리눅스, 파이어폭스 등 대안적 환경을 애용하는 사람들의 고충은 더해만 간다. 그러나 기업들이 자신에게 편하고 부담이 없는 길을 택한
것일 뿐, 실제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액티브X에 전혀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 기술은 이미 유효기간이 다했다는 선언을 받았다.
* 매너#3: 남의 PC를 맘대로 만지지 마시오
누가 갑자기 여러분의 PC 앞에 앉아 CD를 넣더니 무언가를 막 설치한다면? 당장 무슨 짓이냐며 못하게 막을 것이다. 액티브X가 하는 일이
바로 이렇다. 일종의 윈도 프로그램을 웹을 통해 우리의 PC에 까는 것이다. 사이트에 들어가 설치 경고 창이 뜰 때마다 우리의 PC에는
프로그램이 하나씩 늘어난다. 즉 하드디스크와 메모리가 조금씩 더러워진다. 아무리 최신 컴퓨터라도 덕지덕지 누더기가 된다면 느려지는 것은 순식간.
그러지 않아도 웹브라우저는 메모리를 걸신들린 듯 장악한다. 그 식욕에 이 기생 프로그램들이 가세를 하는 것이다.
△ 플래시
등이 많은 들어간 사이트는 주소를 친 뒤 페이지를 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플래시와 GIF, 미디어 플레이어를 이용한 광고가 삽입된 영화
사이트(맨 위). 웹2.0도 깨끗했던 인터넷 초창기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웹2.0으로 구글에 AJAX를 적용한
예(위) |
매너 있는 웹사이트라면 브라우저로 온 손님에게는 브라우저만으로 일을 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표준을 충분히 지원하도록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브라우저만으로 사실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외국 사이트는 브라우저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다.
이렇게 웹에서 자동 설치되는 코드들은 일반 프로그램에 비해 대부분 버전업 사이클이 잦다. 충분한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베타 수준의 미완성
본도 일단 배포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이러한 불량 모듈들은 기존의 윈도 시스템과 충돌을 일으키거나 메모리를 유출시켜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하기도 한다.
* 매너 #4: 사용자 환경이 모두 같은 건 아니오
언제부턴가 웹페이지의 규격은 1024×768의 해상도에 맞춰서 디자인이 되고 있다. 모두가 공평하게 15인치 모니터라면 상관이 없지만,
모니터의 크기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크기 차이에서 와이드 여부까지. 넓어진 화면에서 보면 한쪽으로 몰리거나 지나치게 여백이 많은 사이트들이
있다. 이래서야 모처럼 고가의 대화면 모니터를 쓰는 보람이 없다.
대화면은 사치의 투정이라고 해두자. 문제는 작은 화면이다. 머지않아 등장할 예정인 울트라 모바일 PC, UMPC(코드명 오리가미)는
7인치에 800×480의 해상도다. 테스트해본 결과 상당수의 웹사이트들이 이 해상도에서는 좌우로 스크롤을 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개중에는 좌우 스크롤이 불가능한 페이지도 있다.
또 플래시가 설치돼 있지 않으면 조작이 되지 않는 사이트도 있다. 메뉴를 움직이는 데도 플래시를 이용한다면, 이는 남용이다. 플래시와 같은
추가물이 사용될수록 웹의 접근성은 떨어진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웹의 내용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쓰고 있다면 플래시만 있는 페이지는
무용지물이다.
찰나적인 관심을 끌기 위한 아바타나 아이템으로 도배된 의미 없이 무겁고 답답한 웹은 이러한 흐름의 결과다. 오로지 콘텐츠만을 읽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콘텐츠만을 끌어다 자신의 환경에서 읽겠다는 블로그의 RSS는 어찌 보면 이러한 답답함의 소산이다.
* 매너 #5: 주민등록번호? 이메일만으로 충분하오
고객에 대해 너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상 세계에 들어온 주민들의 현실을 캐묻는 것은 거부감만을 준다. 상점에 들어온 손님에게
주민등록번호와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고 관심 분야를 3가지 선택하라고 표를 내민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실 웹에서 수집해야 할 필수 정보는 이메일 하나로 충분하다. 상대방이 누군지 구별할, 그리고 확인 가능한 한 가지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비즈니스 모델에서 고객에 대해 조금 더 알아야 한다면, 입력 칸을 선택사항으로 두고 다른 혜택을 제시해 스스로 입력하도록 해야
한다.
웹2.0은 전혀 새롭지 않다?
최근 불고 있는 웹2.0의 담론은 다시 웹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다. 물론 웹2.0의 담론에는 다양한 변화와 변혁의 논리가
녹아 있지만 결국은 사용자를 위한 ‘매너 있는 웹’이 화두다. XML이나 CSS 등 이미 브라우저가 수년째 지원하고 있는 표준을 잘만 활용하면
플래시나 윈도 프로그램 뺨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AJAX라고 웹2.0의 첨병인 양 여기저기 떠들고 있는 기술도 실은 이미 브라우저가 제공하는
기본 기능을 다시 잘 활용하자는 것뿐이다.
아무것도 추가로 설치하지 않아도, 오로지 표준만을 따라가도, 즉 사용자에게 아무런 부담을 더 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더욱더 상큼하고 기발한
사이트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 웹2.0은 이러한 매너에 관한 이야기다. 그 결과 웹2.0 시대에 뜨는 사이트들도 하나같이 고객을 즐겁게
하는 사이트들이다.
우리 사회의 웹사이트에서 매너가 없어진 이유, 이해는 간다. 사용자를 위해 해주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은 나머지 서투른 웹사이트가 되고 만
것이다. 초심을 지키면서도 매너 있는 사이트가 될 수 있음을 최근의 웹2.0 붐은 가르쳐주고 있다.
청정 웹을 유지하는 비법
가볍고 산뜻한 웹을 만나기 위한 (좀 귀찮은) 두 가지 요령이다.
첫 번째, 윈도XP라면 서비스팩2를 설치하자.
서비스팩2에는 팝업이나 기타 불필요한 설치 파일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다. 처음에는 이 기능이 불편할지 모르나 청정
환경을 구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팝업을 막아주는 기능은 구글 툴바에도 탑재돼 있다. 이 기능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두 번째, 파이어폭스(www.mozilla.com/firefox/)를 사용해보자.
웹을 돌아다니다 보면 창이 어느새 여러 개로 늘어나 있는 경우가 있다. 개중에는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새 창을
띄워 화면 가득 웹의 향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러한 혼돈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파이어폭스가 제공하는 ‘탭브라우징’이 제격이다. 화면에
웹브라우저를 단 하나만 꽉 차게 띄워놓고 상단의 탭을 눌러가면서 여러 사이트를 순회할 수 있게 된다. 브라우저가 여러 개 화면에 흩어져 있어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보다는 훨씬 더 정리가 되고 좋다.
게다가 파이어폭스는 현존하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보다 웹 표준
준수력이 뛰어난 브라우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국내의 많은 ‘매너 없는’ 사이트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파이어폭스로 열리지 않는
사이트들은 ‘제대로 만들지 못한 어설픈 사이트’다. 더군다나 요즈음의 웹2.0 트렌드에도 전혀 발맞출 의지가 없는 곳이니, 관리도 안 되는 곳에
제대로 된 콘텐츠가 있을 리 없다. 과감히 가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꼭 필요한 행정 처리나 돈거래를 해야 한다면, 특정 링크를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열어주는 기능도 있어, 주력 브라우저로 삼기에도 손색이 없다.
시간도 정력도 들지 않는 꼼수도 많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소음 공해는 아예 음량을 줄여 원천 차단한다. 작업 표시줄의 스피커 아이콘을 눌러 ‘음소거’를
체크하는 극약 처방도 있지만, 스피커 대신 이어폰을 꽂아놓기만 해도 소음 테러로부터 사무실 분위기를 지킬 수 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메뉴의 도구(T)→인터넷 옵션→고급을 보면 멀티미디어 설정을 할 수 있다. 웹페이지에서 소리나
애니메이션 재생 여부를 설정하고 심지어 그림을 안 보이게 할 수도 있다(그러나 요즈음은 소리나 애니메이션이 대부분 기본 기능이 아닌 플래시로
되어 있어 효과가 있는 것은 그림 정도다.) 부적절한 화면이 기습적으로 화면을 덮친다면? 떨리는 손으로 X 표를 찾아 죽이는 것도 좋지만,
ESC키로 일단 소리를 죽인 후, Ctrl-W 또는 Alt-F4를 재빨리 눌러 창을 닫아 제압하자.
가장 하드 코어한 방법은 아예 웹서핑을 하지 말자. 불가능할 것 같지만 가능하다. 매너 있는 사이트들은 대부분 RSS를 제공하고 있다. 매너 있는 사이트들로부터 RSS만 구독하고 매너 있는 사이트들이 소개해주는 링크만 찾아가는 것이다. RSS로 보는 웹 방식(www.hanrss.com)도 있는데, 앞으로 윈도우 비스타나 오피스 2007 등 신규 SW들도 RSS를 기본 기능으로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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