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
1914년
독불 전쟁 당시 군대에 징병돼 4년을 복무했고 다시 1939년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파리에 살던 막스는 프랑스 경찰과 독일
게슈타포에 의해 세 번의 포로 수용소 생활을 했다. 특별 사면과 탈출로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다시 망명국 미국의 끊임없는 추방
위협 속에서 그는 세계적 부호 미술 수집가 페기 구겐하임과 거의 강제 결혼하게 된다.
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독일 표현주의 화풍을 보인 그는 이미 유망한 젊은 작가로 각광받고 있었다. 그러나 군복무를 마치고 나온 그는 "쾰른 다다 운동"의 주동자로
철저한 무정부주의자가 되었고 예술에서 무의식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쟁의 대량 학살과 파괴를 복돋아준 기계 문명에 대한 환멸을
표현했다.
<선민의 대량 학살> 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 포병으로 복무했던 프랑스의 폐허가 된 마을을 배경으로 만든 콜라주 작품.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오려 콜라주로 해놓은 도시는 마치 그 위를 나는 파일럿의 시점으로 옆으로, 위로, 거꾸로 비행하며 내려다 본 것
같다. 도시 위를 날며 파괴를 시도하는 큰 날개 달린 비행 기계 이미지는 15세기 성화 "아기 예수를
찬양하는 성모" 화면을 복사해 그 중 천사의 형태만 오려낸 다음, 다시 그 위에 비행기 모양의 사진을 붙인
것이다.
1922년 파리로 이주한 막스는 초현실주의 그룹을 형성했다. 그들은 인간의 무의식 아래
잠재하는 악과 폭력적인 요소를 탐구하며 잠재 의식 속의 이미지를 끌어내 묘사함으로써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합리한 존재임을 표현하려
했다. 그런 무의식의 이미지들을 끌어내기 위한 한 방법으로 막스는 "프로타주"와 "데칼코마니"라는 새로운 그림 기법을 창안해
냈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생겨나는 우연의 형태를 통하여 그것에서 연상되는 새로운 시각적 이미지를 개발해 냈다.
*
프로타주 - 나무, 잎, 헝겊 등의 우둘투둘한 질감을 가진 표면을 연필 등으로 문지르는 것 * 데칼코마니 - 젖은 물감 위에
종이나 캔버스를 눌러 새로운 형태를 얻어내는 방법
Teenage Lightning (프로타주
기법) <풍경화>-초현실적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고안해 낸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그린 작품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화가였던 막스 에른스트는 개인전을 위해 방문한 런던에서, 영국의
부유한 사업가의 딸인 갓 스무살의 미술 학도와 광적인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완강한 부모의 감시를 피해 파리로 도망가지만 그 곳엔 이미
막스의 부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떨어질 수 없어 남불의 농가 마을로 내려가 평생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조국 독일의 프랑스에 대한 선전 포고를 한 날, 막스는 적국 시민이라는
이유로 수용소 생활을 전전하게 된다. 그러다 파리가 독일군에 함락되었고, 천신만고 끝에 수용소를 탈출해 집으로 달려갔을 땐, 이미 그녀는
떠나고 난 후였다. 텅 빈 집에 잠시 머무는 동안 막스는 신화적 배경으로 그녀의 초상을 그리고 ..또 그렸다. 그 중 하나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다음의 작품이다.
<비 내린 후의 유럽> 비(폭탄) 내린 후 앙상하게 뼈만
남은 완전 폐허가 된 땅 위에 마지막 남은 전사는 새 모습의 투구를 쓰고 뼈만 남은 말 옆에 서서 돌아서 가는 여인을 지켜보고
있다. 막스 에른스트는 페기 구겐하임의 도움 아래 뉴욕으로 망명하고, 그
곳에서 운명의 옛 연인을 만났으나 그녀 역시 이미 남의 아내가 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으나
결국 그녀는 눈물로 애원하는 막스를 뿌리치고 남편을 따라 멕시코로 떠나버렸다...
이 후 막스는 자신의 신분 보장을 위해
페기와 결혼하지만, 여전히 떠나간 연인에 대한 생각과 그녀에 대한 그림만을 그렸다. 막스의 가슴 속엔 오래 전부터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으며 오직 그녀를 생각하며 그녀를 주제로 하는 그림에 몰두할
뿐이었다. 그 여인과 함께한 남불 농가에서의 삶은 막스에게 일생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조국 독일의 선전 포고와 함께
급작히 포로 수용소로 끌려다니는 동안 우여곡절 끝에 남의 아내가 되어 나타난 그녀와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그린
그림들이다.
<안티포프>-미국 망명 후 추바으이 위험으로 페기 구겐하임과
결혼하고
나서, 역시
탈출 목적으로 이미 남의 아내가 된 여인을 뜻밖에 상봉하게
된 착잡한
상황에서 그린
그림.
페기는 왼쪽의 말 이미지가 자기 자신이라고 단정하여 이
그림을
결혼 선물로 요구했다.
<신부의 약탈>- 막스와 페기, 옛 연인과의 삼각 관계 속에서 그린
그림. 진홍빛
털의 새 모습이 작가 자신을 상징한다.
결국 페기와
이혼한 후, 남은 30여년 동안 동반자가 될 절세 미모의 초현실주의 화가를 만나 뉴욕 근방 작은 마을에서 작품에
전념한다.
그 후 1953년 12년의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프랑스로 귀국한 막스는 1954년 베니스 비엔날레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 상은 막스에게 국제적 명성과 경제력을 주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85세로
사망할 때까지 막스는 그림보다 조각에 마지막 정열을 쏟았고 그가 남긴 조각가로서의 업적은 화가로서의 위치와
대등하다.
막스 에른스트는 어릴 때부터 세상은 눈을 감은 상태에서만 감지할 수 있다고 믿었고 끝까지 그 믿음을
바탕으로 다다와 초현실적 스타일을 통해 눈을 감고 보이는 세계를 시각화하려 했다. 육체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으며 그
눈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 역시 한계가 있다고 믿었다. 그는 어떤 에너지를 포착해냄으로써 거기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일이
화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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