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다르푸르를 탈출해 지난달 20일 영국에 밀입국한 딜리(가명·사진) 씨가 ‘아프리카판 킬링필드’의 참극을 털어놓았다. 그는 친정부 아랍계 민병대인 ‘잔자위드’에서 지난 3년간 활동했다. 이 잔자위드 대원의 고백을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18일 전했다.
흑인 부족을 주축으로 한 기독교도와 아랍계 무슬림은 다르푸르에서 토지 소유권과 농업용수를 두고 수십 년간 충돌을 빚어 왔다. 양측의 대립은 2003년 초 수단해방군(SLA)과 정의평등운동(JEM) 등 반군이 빼앗긴 토지의 반환과 자치를 요구하며 정부 시설을 공격하면서 폭발했다. 잔자위드가 다르푸르에 거주하는 흑인 부족을 무차별 공격하면서 대량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딜리 씨의 가족은 다르푸르 북부 지역에 살고 있었다.
부족 어른들이 잔자위드에 가입하라고 딜리 씨의 등을 떠밀었다. “우리 아랍 유목민들은 스스로 땅과 가축을 지켜야 한다”고 했지만, 수단 정부의 압박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딜리 씨가 켑카비야에 있는 잔자위드 훈련 캠프에 합류하자 군복을 입은 수단 군인들이 사격과 공격 작전에 관해 가르쳐줬다. 20일간 훈련을 마친 뒤 500명씩 대대를 편성했다. 1인당 200만 수단파운드(약 89만 원)와 낙타를 나눠주고 매달 50만 수단파운드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딜리 씨는 3년간 다르푸르의 30여 개 시골마을을 공격했다. 오두막에 불을 질렀고, 여자와 아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죽였다. 그는 몇 명에게 총을 쐈는지 셀 수도 없다고 했다. 잔자위드는 “흑인을 죽여라, 모두 죽여 버려라”고 외치고 다녔다.
일부 잔자위드 대원은 ‘아랍계 피를 아프리카에 이식한다’는 명분으로 어린 소녀와 여자들을 성폭행했다. 저항하면 곧바로 총을 쐈다.
딜리 씨는 “생존자는 마을을 떠나 천막을 치고 살기도 했지만 물과 식량이 없어 대부분 죽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잔자위드가 ‘인종청소’를 위한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모든 것이 정부의 명령”이라고 했다. 공격 전 위성전화를 이용해 수단 군 헬기의 지원을 요청한 적도 있었다.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은 1989년 아랍계 무슬림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에 성공했다.
딜리 씨와 동료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명령 불복종은 처형을 뜻했다. 번민을 거듭하던 딜리 씨는 전쟁과 잔자위드의 포악한 행태에 환멸을 느껴 수단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딜리 씨는 잔자위드를 탈출해 리비아∼이탈리아∼프랑스를 거쳐 생수병 상자 사이에 숨어 영국으로 밀입국했다. 지금은 런던 남부 크로이든의 한 호스텔에서 망명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대량학살 예방단체 ‘이지스 트러스트’는 수단 지도부에 의한 대량학살의 증거로 딜리 씨의 증언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출할 계획이다. ICC는 5월 임시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 다르푸르 사태를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그간 발생한 성폭행과 살인, 약탈 행위를 면밀히 조사해 오고 있다.
‘이지스 트러스트’를 이끄는 제임스 스미스 박사는 “딜리의 증언은 수단 정부가 잔자위드의 인종청소 작전을 시작부터 조직하고 지원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흑인 부족을 주축으로 한 기독교도와 아랍계 무슬림은 다르푸르에서 토지 소유권과 농업용수를 두고 수십 년간 충돌을 빚어 왔다. 양측의 대립은 2003년 초 수단해방군(SLA)과 정의평등운동(JEM) 등 반군이 빼앗긴 토지의 반환과 자치를 요구하며 정부 시설을 공격하면서 폭발했다. 잔자위드가 다르푸르에 거주하는 흑인 부족을 무차별 공격하면서 대량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딜리 씨의 가족은 다르푸르 북부 지역에 살고 있었다.
부족 어른들이 잔자위드에 가입하라고 딜리 씨의 등을 떠밀었다. “우리 아랍 유목민들은 스스로 땅과 가축을 지켜야 한다”고 했지만, 수단 정부의 압박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딜리 씨가 켑카비야에 있는 잔자위드 훈련 캠프에 합류하자 군복을 입은 수단 군인들이 사격과 공격 작전에 관해 가르쳐줬다. 20일간 훈련을 마친 뒤 500명씩 대대를 편성했다. 1인당 200만 수단파운드(약 89만 원)와 낙타를 나눠주고 매달 50만 수단파운드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딜리 씨는 3년간 다르푸르의 30여 개 시골마을을 공격했다. 오두막에 불을 질렀고, 여자와 아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죽였다. 그는 몇 명에게 총을 쐈는지 셀 수도 없다고 했다. 잔자위드는 “흑인을 죽여라, 모두 죽여 버려라”고 외치고 다녔다.
일부 잔자위드 대원은 ‘아랍계 피를 아프리카에 이식한다’는 명분으로 어린 소녀와 여자들을 성폭행했다. 저항하면 곧바로 총을 쐈다.
딜리 씨는 “생존자는 마을을 떠나 천막을 치고 살기도 했지만 물과 식량이 없어 대부분 죽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잔자위드가 ‘인종청소’를 위한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모든 것이 정부의 명령”이라고 했다. 공격 전 위성전화를 이용해 수단 군 헬기의 지원을 요청한 적도 있었다.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은 1989년 아랍계 무슬림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에 성공했다.
딜리 씨와 동료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명령 불복종은 처형을 뜻했다. 번민을 거듭하던 딜리 씨는 전쟁과 잔자위드의 포악한 행태에 환멸을 느껴 수단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딜리 씨는 잔자위드를 탈출해 리비아∼이탈리아∼프랑스를 거쳐 생수병 상자 사이에 숨어 영국으로 밀입국했다. 지금은 런던 남부 크로이든의 한 호스텔에서 망명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대량학살 예방단체 ‘이지스 트러스트’는 수단 지도부에 의한 대량학살의 증거로 딜리 씨의 증언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출할 계획이다. ICC는 5월 임시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 다르푸르 사태를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그간 발생한 성폭행과 살인, 약탈 행위를 면밀히 조사해 오고 있다.
‘이지스 트러스트’를 이끄는 제임스 스미스 박사는 “딜리의 증언은 수단 정부가 잔자위드의 인종청소 작전을 시작부터 조직하고 지원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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