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인심에 갑절로 배불러 - 거창군 서변리 대전식당 갈비탕
"무슨 갈비탕 한 그릇이 8천원이나 해." "저 아줌마들, 주문도 안 받고 왜 저리 느릿느릿하지."
이 모든 푸념들이 갈비탕 한 그릇에 사르르 녹고야 말았다. 그렇게 푸짐한 갈비탕은 처음 봤다. 하기야 거창 대전식당은 전국에 소문 난 곳이다.
갈비탕의 살코기 덩어리가 뚝배기에 넘쳐났다. 1만1천원 하는 특 갈비탕은 아예 살코기가 뚝배기를 점령해버렸다. 집게와 가위가 딸려나왔다. 살코기 덩어리를 가위로 잘라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살코기가 아주 그저그만으로 부드러웠다(국내산 젓소를 사용한다). 국물 맛 또한 일품이었다. 각종 약재를 넣은 것 같으나 약 냄새는 전혀 나지 않고 구수했다. 이런 갈비탕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놀라웠다.
아줌마들의 느릿느릿한 모습들이 이제 달리 보였다. 도시 사람들은 재빠르다. 메뉴도 재빠르게 개발하고 잇속도 재빠르게 챙긴다. 시골스런 저런 느릿느릿함이 음식의 제맛, 갈비탕이라는 이름의 제값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갈비탕 한 그릇을 먹으면서 "우리는 조금 더 천천히, 느리게 말과 음식의 제값을 새기면서 명실상부한 삶을 살 수는 없을까'를 생각했다. 갈비탕의 반찬은 15가지. 도시 사람이 입에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이미 감탄한 이의 입에는 그 반찬들이 착착 들러붙었다. 달고 신 두 종류의 깍두기, 배추무침 고추지 무말랭이 열무무침 등. 고추지가 알맞게 곰삭아 제맛을 냈다. 말 그대로의 '갈비탕'과 맛깔스런 반찬 앞에서 '식탐'의 욕구가 제멋대로 놀고야 말았다.
그 포만하게 그득한 갈비탕의 모습이 언제까지고 기억에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거창읍에서 김천 방향으로 3번 국도를 타고 긴가민가하면서 6~7km를 가면 길 오른편에 '대전식당' 간판이 보인다. 그때가 금요일 오후 7시 무렵이었는데 어디서 온 손님인지 40여명으로 큰 방이 가득 찼다. 수육 4만원(대) 3만5천원(소). 이 집이 30여년 된 거창갈비탕의 원조 집이다. 이곳 원동마을에 '삼산이수' '원동갈비찜' 등도 있다. 할머니(71)가 대전 출신이어서 대전식당이란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딸이 운영하고 있다. .
#지리산에 깃든 70년 솜씨 - 산청군 산청읍 춘산식당 비빔밥
산청군청 정문 바로 코앞에 있다. 40여년 된, 산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산청을 대표하는 한정식 집이다. 실제로 이 집의 내력은 40여년이 아니라 더 깊다. 임정달 할머니의 생전 음식 솜씨와 두툼한 인심은 산청장터 골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 어머니의 솜씨를 이어 받아 이순이(74) 할머니가 '춘산식당'을 열었고, 아들 최귀경(57)씨, 그리고 손자(37)에까지 대를 잇고 있는 것이 지금의 춘산식당이다. 그게 따지면 70년 내력이란다. 최귀경씨는 "우리는 어머니부터 제 손자까지 4대가 한 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살면서 솜씨와 눈썰미가 이어지고 있을 것 같았다.
오전 10시 30분께 들러 비빔밥을 먹었다. 깔끔한 그릇들에 정성 담긴 반찬들이 한눈에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호박과 버섯을 한데 무쳐놓은 것, 땅콩 해바라기씨 호박씨를 한데 버무려 놓은 것, 고구마 줄기와 홍합을 한데 무쳐놓은 것들은 반찬 하나에 재료를 2~3가지 넣은 것들이다. 가지 수는 이른바 정성이렷다. 그렇게 비빔밥 반찬이 9가지였다. 시락국 맛은 심심한 것이 여운을 끌었다. 비빔밥을 보니 호박 정구지 산나무 고사리 콩나물과 쇠고기 볶은 것이 고명으로 얹혀 있다. 쌀은 산청 특산의 '탑 라이스' 쌀을 쓴단다. 제 지역에서 나는 특산 쌀을 사용해 무엇보다 밥맛에 신경을 쓴 것이다.
왜 비빔밥을 먹었을까? 한정식은 낮 12시부터 낸단다. 한정식 값은 2인 3만원이고, 3인 이상일 때는 1인 1만2천원으로 상차림을 하는데 그 가격과 양이 부담스러운 이들이 먹을 수 있게 비빔밥(6천원) 추어탕(6천원) 재첩국(7천원) 메뉴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비빔밥은 간단한 메뉴라는 말인데 혀에서 목구멍으로 미끌어져 들어가는 그 맛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았다.
한정식은 최씨의 소개를 통해 귀로만 맛 봤다. "반찬이 30가지가 나와요. 산청과 산청 근처에서 나는 것들이지요. 예를 들면 낙지 조기 등의 해물 어류는 근처의 삼천포에서 가져오는 것들이에요. 산나물과 다른 채소류들은 지리산과 이곳 산청에서 나는 것들입니다." 근처 웅석봉의 봉우리가 참 웅장해 보였다. 흑돼지불고기 2만원, 소고기불고기 3만원도 메뉴에 있다.
#맛 못 잊은 대통령이 다시 들른 곳 - 의령군 의령읍 종로식당 쇠고기국밥
의령군청 앞, 군청을 마주보고 왼쪽의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골목 안에 있는 종로식당은 쇠고기 국밥집이다. 일명 '대통령 국밥집'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봉순 시어머니를 이어 2대째 대를 잇고 있는 주인 송영희(48)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두 번이나 우리집을 다녀갔다"고 했다. 처음에는 고속도로 현장을 왔다가 들렀고, 뒤에는 맛있었다며 일부러 찾아왔다고 한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전 대통령도 암행을 나왔다가 찾은 적이 있단다.
의령군에 있는데 왜 종로식당일까? 예전에 장터에서 성업 중일 때 군청에 허가를 내고 하라며 읍장이 지어준 이름이 종로식당이었단다.
골목 쪽으로 마주한 방에 창문이 열려 있고 바로 거기에 가마솥이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어 대번에 알아보았다. 십수 년 전, 언젠가 한 번 왔던 집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것이 자리에 앉아 쇠고기 국밥 한 숟갈을 떠니 또렷해진다. 쇠고기가 쏜살같이 스쳐 지나간 흔히 볼 수 있는 국밥이 아니라 쇠고기를 입과 혀, 이의 감촉으로 실감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국밥이다. 아삭아삭한 콩나물에 시뻘건 국물 또한 쇠국기 국밥의 본령이다. 뻘껀 국물이 입맛을 자꾸만 자극하여 정신없이 먹으면 정신없이 콧물 흐르기 일쑤다. 그러나 맛나게 품위없이 먹을 수 있는 게 우리의 국밥이다. 반찬은 간단한데 김치가 맛깔스러운 게 보통이 아니다. "이 집 김치 맛…" 운운하는 이들도 많다. 김치에 고추 양파가 곁들여져 있다. 사실상 맛난 국밥은 반찬이 없어도 국밥 하나로 후루룩 하면 끝나는 법이다. 밥이 부족하면 공기밥(1천원)을 추가하면 되고, 따로 국밥을 먹고 싶으면 미리 말하면 된다.
국내산 한우만을 사용한다. 쇠고기 국밥 6천원, 곰탕 8천원, 수육 4만5천원(450g) 3만5천원(350g). 근처에 역시 쇠고기 국밥으로 유명한 수정식당 등이 있다. 의령시장 쪽으로 내려서서 모퉁이에 한솔약국이 있는 골목에 들어가면 '의령소바 다시식당'과 그 맞은편에 '의령망개떡'집이 있다. 쇠고기 국밥, 소바(일본식 메밀국수), 망개떡이 의령의 알아주는 세 가지 맛이다.
#깔끔한 국물, 비결은 암퇘지 육수-밀양 무안면 동부식육식당 돼지국밥
밀양은 일설에 돼지국밥의 원조로 통하는 곳이다. 밀양 중에서도 돼지국밥의 동네가 바로 무안면이다. 이곳에서 길 가는 사람에게 돼지국밥집을 찾으면 "어느 돼지국밥집을 찾느냐"고 되묻는다. 계보에 들어 있는 무안식육식당, 제일식육식당, 동부식육식당 들이 있기 때문이다. '식육식당'. 고깃집과 식당을 겸하고 있는 미분화된 이름, 그 얼마나 정감 넘치는 이름인가. 국밥집이 있는 곳은 예로부터 시장이 있는 곳. 역시 근처에 무안시장도 있고, 무안면사무소도 있다.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3곳은 최씨 3형제가 3대째 70년 가업을 이으면서 각각 운영하고 있는 돼지국밥집이다.
3형제 중에서 막내가 한다는 무안면사무소 근처의 동부식육식당에 들렀다. 오후 4시께, 점심때도 저녁때도 아닌 시간. 아무도 없었다. "돼지국밥 두 그릇 주세요." 반찬은 간단했다. 깍두기김치 배추김치 고추 양파 마늘 막장 새우젓 소금 다대기. 그리고 국밥에 넣어 먹는 국수 한 젓가락.
우선 국물 맛부터 보는데 국물 맛이 예사롭지 않다. 기름이 하나도 떠지 않고 아주 맑고 투명했다. 돼지국밥이 쉽지 않은 음식으로 노린내가 날라치면 볼짱 다 보는데 이집 돼지국밥은 노린내의 'ㄴ' 자도 명함을 못 내밀 정도로 아주 깔끔하고 담백했다. 처음 먹어보는 돼지국밥의 국물 맛이었다. 그 다음에 숟가락은 일사천리로 달렸다.
여주인은 "소뼈로 고아낸 육수에 연한 암퇘지를 넣어 만든 곰탕 같은 국밥이 이곳의 돼지국밥"이라고 했다.
다만 돼지국밥을 많이 먹어본 입맛에는 돼지 고깃살이 팍팍했는데 주인에게 '내장'을 섞어 달라고 미리 주문을 하면 된다. 돼지국밥, 따로국밥 각 5천원. 소주 한 잔이 생각나는 삼겹살은 1인분 6천원. 돼지수육 2만원(대) 1만5천원(소). 소국밥 소곰탕도 각 5천원이며 소수육 소육회 소로스도 있다. 재료는 전부 국내산이다. 주차장 넓다. 근처, 걸어서 20분 거리에 땀 흘리는 표충비가 있다. 부산에서 부곡온천 가는 길로 가다가 한적한 1080 지방도를 타고 올라가면 무안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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