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유현아(38)씨의 삶은 슬픔으로 채색돼있다.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간 유씨는 텍사스 주립대에서 분자 생물학을 전공했다. 어릴 적부터 줄곧 교회 성가대에서 독창을 했지만, 직업으로 노래를 택하게 될 줄은 몰랐던 평범한 과학도였다. 실험실에서 밤 새워 실험하고 공부하던 여대생 유씨는 스무살에 첫 사랑을 만났다.
같은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당시 27세의 유영호씨였다. 3년 반 동안 열애한 이들은 1991년 결혼했다. 남편이 보잉사(社)에 취직하면서 부부는 필라델피아로 보금 자리를 옮겼다. 결혼 2주년을 2주 정도 앞둔 1993년 2월 14일. 그 밸런타인 데이가 유현아씨의 삶을 바꿔놓았다.
유씨가 필라델피아 교회 성가대에서 저녁 연습을 하는 동안, 남편은 5개월 된 아들 다니엘을 재우기 위해 차 안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10대 흑인 형제 2명이 차량으로 다가왔고, 수 차례 총성이 들렸다. 남편은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졌고, 불과 몇 시간 뒤 세상을 떠났다. 그 해 필라델피아에서 처음 일어난 차량 탈취 사건이었다.
첫 사랑과 이별하기란 쉽지 않았다. 유씨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눈물로 날을 보내고 하루에도 기절하기를 몇 차례씩 거듭했다”고 했다. 남편이 떠난 자리에 음악이 남았다. 보다 못한 피아니스트 언니는 동생에게 ‘노래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꼭 노래를 한다기보다는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때부터 유씨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해 5월에 추가 오디션을 통과하며 피바디 음대에 합격했다. 아픔이 없을 수 없었다. 좋아하는 슈베르트와 슈만의 가곡을 부를 때마다 눈물이 그치질 않아 중간에 멈춘 적도 많았다. “가곡은 사랑이나 이별, 아픔과 갈망을 담고 있잖아요. 부를 때마다 마음 속 상처가 덧나는 느낌이었어요. 스승인 존 쉴리 퀴크(바리톤)가 저를 부르더군요. ‘아픔이 있더라도 노래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고.”
출발은 늦었지만 발전은 빨랐다. 학부 4년 과정을 3년 만에, 석사 과정을 1년 만에 마쳤다. 98년 네덜란드 국제 성악 콩쿠르와 99년 뉴욕의 월터 나움버그 콩쿠르에 잇따라 입상했고, 2003년에는 전 세계의 유망한 젊은 음악가에게 수여하는 상인 영국의 볼레티 뷰토니 트러스트 상(賞)을 수상했다.
1996년 볼티모어 심포니의 오라토리오 연주회로 데뷔한 유씨에게 올해는 성악가 데뷔 10년을 맞는 해다. 오는 12월에는 세계적 음반사인 EMI를 통해 바흐의 종교곡과 모차르트의 아리아가 담긴 데뷔 음반을 발표한다.
서정적인 리릭(lyric) 소프라노에 속하는 유씨의 목소리는 모든 슬픔을 딛고 빚어냈기에 그만큼 더 맑고 청아하기만 하다. 오는 12월 27·28일 정명훈 지휘의 서울시향 음악회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협연하기 위해 내한한다. 유씨의 첫 한국 무대다. 유씨는 “생김새와 농도가 다를 뿐, 아픔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음악을 통해 함께 아픔을 치료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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