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타고 한 팔로 지평선을 가리키며 뻗고 있는 인디언을 묘사하고 있는 이 최대의 조각은 크레이지 호스가 '나의 땅은 내가 죽어서 묻히는 곳'이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산 하나를 통째로 이용하여 만들어가고 있는 이 세계 최대의 조각상은 인디언 구역에 침입한 미국군대에 저항하여 싸우다 살해된 추장 '크레지지 호스'라는 인물을 기리기 위해 제작되고 있는 기념비다.
'크레이지 호스 메모리얼'은 큰바위 얼굴에서 27km 떨어진 같은 산줄기에 자리잡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러시모어의 대통령 얼굴 바위 뒤쪽 편으로 불과 약15마일의 거리를 두고 역사의 피비린내 나는 가해자와 피해자 각각의 영웅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러시모어 산에 새겨진 역대 대통령 얼굴은 미국 정치사의 커다란 이념이지만 인디언 투사인 크레이지 호스의 바위 얼굴은 패자의 설움을 딛고 부활하는 원주민의 절규를 그려내고 있다. 큰 바위 얼굴이 미국 역사의 힘찬 전진과 웅장함을 대변한다면 크레이지 호스는 학살에 의해 사라진 영혼을 부르는 형상인 것이다.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성난 말)는 미국이 남북전쟁 후 인디언과 영토분쟁이 치열했던 시기인 1876년 용맹을 떨쳤던 수우족 전사의 이름이다. 인디언식 이름은 타슈카 위트코(Tashuka Witco)로 그는 리틀빅혼 전투에서 미국 제7 기병대 존 커스터의 군대를 대파하는 공적을 세운 인디언의 전설적 영웅이다.
위대한 백인들은 높이가 18미터 이지만 위대한 원주민은 그보다 열배는 더 크게 만들리라 결심했다. 1948년 착공되었으나 아직 미완성 상태인 이 조각상은 높이 171미터에 길이 201미터나 된다. 무려 54년의 세월 동안 얼굴 하나가 마무리되었으며 완성까지도 향후 100년은 더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높이 1700미터의 바위 산 전체를 변형시키는 이 세계 최대의 조각상 '크레이지 호스'는 1948년에 정부의 도움없이 지올코우스키라는 조각가가 시작하였으나 1982년에 그 조각가는 사망하였다. 현재는 그의 10명의 자손들이 조각을 하고 있다. 정부에서 1천만 불을 지원하겠다는 제의를 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관광객으로부터 차량 한 대당 17불씩을 받은 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1998년에 얼굴이 완성되었고 현재는 팔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으며 결국에는 산 전체에 몸통과 머리모양이 조각될 것이라고 한다.
그 곳에서 불과 5마일 떨어진 곳에는 미국의 커스터 장군을 기념하는 커스터 주립공원이 있다. 커스터는 남북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장군이 되었다.
1850년대 미대륙은 골든러시로 밀려드는 백인들과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려는 인디언간에 처절한 전쟁이 시작됐다.
커스터는 정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혼자서 공을 세우기 위하여 군대를 둘로 나누어 인디언들을 공격하지만 '크레이지 호스'가 이끄는 인디언들에게 패배를 당하게 되고 결국 그도 가슴에 총알을 맞고 벌거벗은 사채로 발견되었다. 커스터는 용감하고 많은 공을 세웠지만 과욕으로 미국역사상 인디언들에게 가장 커다란 패배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주술사의 아들로 태어나 추장까지 된 '크레이지 호스'는 계속되는 미군의 침략으로 1년여만에 전력의 대부분을 잃었다. 그리고 나머지 전사들을 이끌고 미군의 회유책에 유인되어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들어갔으나 결국 체포되어 비참하게 죽어갔다. 그는 전통 장례의식 속에 동료 인디언들의 애절한 송가를 들으며 원주민 고향의 묘소인 운디드니(Wounded Knee:상처난 무릎) 땅에 부모에 의해 묻혔다. 이후 나머지 부족 대부분도 운디드니에서 커스터의 옛 부대기병대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갔으며 크레이지 호스의 시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항쟁은 종지부를 찍고 만다.
그를 기억에서 되살려 낸 이가 폴란드계 미국인 조각가 코자크 지올코브스키(1908∼1982)다.
그는 러시모어 산의 4대 대통령 조각에도 참여했는데, 큰바위 얼굴의 작업이 끝날 즈음인 1939년 수우족의 추장으로부터 인디언 땅 위에 인디언의 영혼을 담은 조각을 제작해 달라는 제안서를 받았다. 크레이지 호스가 죽던 바로 그날 태어난 코자크는 어떤 숙명감으로 작업 의지를 굳혔던 것이다.
그는 1982년 7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까지 35년간 750만톤의 돌을 깼다. 지올코브스키는 1982년에 죽었지만 그의 아내와 열명의 자녀들과 크레이지 호스 기념재단이 그의 작업을 계승했다. 그 거대한 조각상의 얼굴은 1998년 제막되었으며 곧바로 말의 머리를 조각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자금이 턱없이 모자랐으나 그는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지는 않는다. 이 조각 프로젝트의 모든 예산은 일반인들이 낸 입장료 및 기부금과 화강암 조각 세공품을 판매한 돈으로 충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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