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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도 머물다 가는 추억의 기차역

Sosahim 2008. 11. 17. 15:59

 

 

기차가 멈췄다 떠나는 기차역은 매력적인 장소이다. 기차가 띄엄띄엄 서는 외딴곳의 간이역은 한적한 풍경을 전해서 좋고,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한 오래된 역은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서정이 깃들어 있어 즐겁다. 단순히 떠나고 도착하는 장소였던 기차역은 이제 예술의 무대가 되기도 하고, 다양한 시설로 즐거움을 주는 관광지가 되기도 한다. 늦가을에 돌아보면 좋을 국내의 특별한 기차역들을 소개한다.

■경춘선 강촌역, 그라피티로 재탄생한 예술 역

북한강변에 자리한 강촌은 젊은이들의 모꼬지 명소이다. 주말이면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이 찾아왔다 떠나가곤 한다. 특히 강변 위 바위 위에 올라선 강촌역에서는 경쾌하게 흐르는 물줄기와 강을 가로지르는 철교의 낭만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은 떠남을 아쉬워하며 강촌 여행의 마지막을 역사에서의 사진 촬영으로 마무리하곤 한다. 기념사진 촬영과 함께 얼마 전까지 추억 남기기의 또 다른 방법은 낙서였다. 역사 기둥과 벽면 등은 온통 낙서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낙서는 강촌역의 명물이자 미관을 해치는 애물단지였다.

지난 6월부터 낙서로 얼룩졌던 강촌역이 완전히 탈바꿈했다. 어지러운 낙서 대신 스프레이 등으로 그림을 그린 화사한 그라피티(Graffiti)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는 장소에 썩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예술 역사로 변모된 후 관광객들은 강촌역 바깥 풍경이 아닌 역사 내부의 그라피티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한다. 예술작품 같은 그림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바라보다 기차에 오르기도 한다.

강촌역에서 구곡폭포까지 3.5㎞ 구간이 자전거 전용 도로이며, 이른 아침 철교 아래의 물안개가 환상적이다.

▷찾아가기 = 서울 청량리역에서 강촌역까지 무궁화호 열차로 1시간 40분이 걸리며, 운임은 편도 기준으로 어른 4천500원, 어린이 2천200원이다. 문의 1544-7788

■경북선 점촌역, 어린이를 위한 동화 속 세상

점촌역은 경북 문경에 있는 한적한 시골 역이다. 석탄 산업이 사양화되고, 다른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점촌역에 정차하는 기차는 하루 6~8대에 불과하다. 한적한 시골 역이 최근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점촌역은 역사에 코스모스를 심고 풍차방앗간과 스머프 마을 등의 포토존을 설치하고 허수아비와 장승, 시(詩) 나무 등 동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볼거리들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속 세상'으로 변모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점촌역의 최대 명물은 명예역장과 명예부역장인 강아지로 모자와 명찰까지 착용한 아롱이와 다롱이다. 관광객과 어린이들은 모두 귀여운 아롱이, 다롱이의 재롱에 웃음 짓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어린이들은 색종이와 수수깡으로 바람개비를 만들어 바람에 날려보기도 하고, 직접 역장이 되어 기차표를 나눠주기도 한다. 1990년대까지 선로 정비 작업에 사용됐던 핸드카에 올라타고 철로를 달리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가을이 되면 피어나는 철로변의 코스모스는 시골 역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선로를 따라 늘어선 88개의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모습도 아름답다. 기찻길 옆에는 우체통이 설치돼 있어, 즉석에서 그리운 사람에게 엽서도 부칠 수 있다.

▷찾아가기 = 서울에서 점촌역까지 곧바로 가는 기차는 없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면 김천역에 내린 뒤 점촌역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 이러면 기차 타는 시간만 4시간 정도 걸린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2시간 만에 점촌에 닿을 수 있다.

■충북선 공전역, 가을 정취 물씬 풍기는 오지

조치원과 제천을 잇는 충북선에서 동량~삼탄~공전 구간은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품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산과 물이 이루는 풍경이 환상적이어서 '충북의 동강'이라고 불릴 정도이다. 그러나 이 구간은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혀 열차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렵다.

특히 충북 제천시 봉양읍의 공전역은 충북선 18개 역 중에서 가장 한가로운 역으로 시골역사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역사 자체는 평범해 보이지만 역을 둘러싸고 있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들은 화사한 빛깔로 가을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한다.

삼탄역으로 가는 철로에는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 설경구가 '나 다시 돌아갈래!'라며 절규하던 장면을 촬영한 철교가 있는 진소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는 영화와 관련된 대형 그림과 안내 동판이 있다. 진소마을까지는 도로가 없어 좁은 산길을 30분 정도 걸어야 닿을 수 있다.

공전역에서 방죽 길을 따라 10여 분 가면 구한말 유인석이 유림 600여 명을 모아 의병을 일으킨 자양영당이 있다. 이곳에는 우암 송시열과 이항로, 이직신 등의 영정이 봉안돼 있다. 인근의 박달재에는 조각공원과 노래비, 서낭당 등이 있으며,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교가 있었던 배론 성지와 물 맑은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탁사정도 가까이 있다.

▷찾아가기 = 서울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기차를 타고 가다 제천에서 충북선으로 바꿔 타고, 10여 분 가면 공전역이 나온다. 버스는 제천 시내 서부동에서 이용하거나 원주-제천 구간 직행버스를 타고 봉양에서 내린 후, 공전행 버스를 이용한다.

■태백선 추전역, 하늘과 가장 가까운 역사(驛舍)

강원도 태백시 삼수동의 해발 855m에 위치한 추전역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역이다. 붉은 벽돌의 역사 간판에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역'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역이 위치한 삼수동은 한강과 낙동강, 동해안으로 흐르는 오십천 등 3개의 물줄기가 갈라지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사람도 거의 없는 산등성에 왜 기차역이 생겼을까? 추전역은 1973년 태백선이 개통됐을 때 이 일대의 무연탄을 실어 나르려고 생겨났다. 이곳을 통해 한 달에 10만t의 무연탄이 전국 각지로 수송되었다고 한다. 태백 지역 탄광이 한창 활기를 띨 때는 역사 인근에 석탄이 산처럼 쌓였다고 한다.

추전역은 사방의 풍광이 가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높아서 한층 가까워진 푸른 하늘과 능선을 따라 늘어선 하얀색의 풍력발전기, 그리고 주변 산을 뒤덮은 오색 단풍이 적막한 역사 분위기와 어우러져 진한 가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한적했던 추전역이 사람들의 발길로 분주해진다. 황홀한 설경을 감상할 수 있는 환상선 눈꽃열차가 이곳 추전역을 지나 승부역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눈꽃열차는 눈으로 하얗게 덮인 추전역에서 1시간 30분 동안 정차한 뒤 철길을 떠난다.

추전역에서 500여m 떨어진 선로의 끝에는, 전라선의 슬치터널(6천128m)이 개통되기 전까지 국내 최장의 터널이었던 정암터널(4천505m)이 있다.

추전역은 연평균 기온이 9℃로 남한의 기차역 가운데 가장 낮고, 적설량도 가장 많아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항상 난로를 피운다고 한다. 주변에는 태백산도립공원, 낙동강이 시작되는 황지연못과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구문소, 용연굴, 태백석탄박물관 등이 있다.

▷찾아가기 = 평소에 서울에서 추전역으로 바로 가는 열차편은 없다. 고한역이나 정선역까지 간 후 싸리재 행이나 통리 행 버스를 타고 구종점에서 내리거나 택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매년 12월~이듬해 2월에는 환상선 눈꽃열차를 타면 된다.

■정선선 구절리역, 기차 테마파크

강원도 정선군 북면의 구절리역은 기차 펜션을 비롯해 레일바이크, 풍경 열차, 카페 등의 기차 테마파크로 유명하다.

이곳의 레일바이크 구간은 국내 최장인 7.2㎞로 구절리역을 출발해 아우라지역까지 폐선로를 따라 이어져 있다. 구간은 대부분 평지이지만, 가끔 내리막길이 있어 페달도 쉽게 밟을 수 있기 때문에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이용하기 좋다. 선로 주변으로는 내륙 산간 지역을 흐르는 송천과 산들이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나기 때문에 페달을 천천히 밟아가며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 좋다. 레일바이크는 2인용과 4인용이 있으며, 보통 50분~1시간가량 걸린다.

최근 '기차 펜션'도 선보였다. 기관차 1량과 객차 4량을 개조한 숙박 시설로 침대방과 온돌방 등 총 9개의 객실은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등의 이름을 달고 있다. 객실 내부는 화려한 벽지를 이용해 말끔하게 꾸며져 있다. 32인치 LCD TV와 에어컨, 정수기, 미니 바, 욕실, 화장대도 갖추고 있다.

객실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도 좋지만 기차와 이어진 나무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노추산과 송천의 풍광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기차 펜션 이용료는 시기에 상관없이 7만 원과 10만 원이며, 레일바이크는 2인용 1만8천 원 또는 4인용 2만6천 원이다. 기차 펜션은 반드시 인터넷(www.korailtours.com)으로 예약해야 하며, 레일바이크는 인터넷 예약과 현장 판매를 하지만 조기 마감이 될 수 있어 서둘러야 한다.

▷찾아가기 = 기차는 아우라지역까지만 운행한다. 자동차로는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진부 IC를 나와 59번 국도를 타고 가다 나전삼거리에서 정선 방향 42번 국도를 이용한다. 아우라지대교를 지나기 전에 좌회전해서 조금만 가면 닿는다.

■중앙선 구둔역, 시골마을의 한적한 간이역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의 구둔(九屯)역은 팔당역처럼 중앙선에 설치된 역으로 1940년 중앙선의 양평~원주 구간이 개통되면서 문을 열었다. 지금은 하루 3번 기차가 서는 한적한 시골의 역사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서울 경동시장으로 나물을 팔러 가던 사람들과 통학생들로 붐볐다.

보통의 기차역이 번화한 곳이나 대로변에 들어선 것과 달리 구둔역은 논밭이 있는 시골마을을 지나 언덕길을 올라야 한다. 역사는 깨끗해 보이는 흰색 벽면에 뾰족한 지붕이 있는 구조로 역 화단에는 말끔하게 손질된 나무들이 서 있다.

구둔역에서는 승차권을 발매하지 않기 때문에 열차에 올라 승차권을 구입해야 한다. 역사의 대기실은 무척이나 작지만 방문객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동그란 탁자와 의자가 있고, 기다란 의자에는 방석까지 깔려 있다. 역사에서 승강장 쪽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가을이면 은행나무에서 샛노란 은행잎들이 떨어져 내려 이곳 마당을 예쁘게 치장한다. 철로를 통해서는 이따금 기차들이 지나쳐 간다.

임진왜란 때 관아의 군사들은 이곳 구둔역 앞으로 보이는 산에 9개의 진지를 구축하고 왜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일대 마을과 기차역의 이름은 9개의 진지에서 유래했다.

수도권 전철화 계획에 따라 구둔역은 곧 무정차 간이역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구둔역은 2006년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모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됐다. 인근에는 수령 1천 년의 은행나무가 화사한 가을 풍경을 전하는 용문사가 있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와 수생식물을 이용한 자연정화공원인 세미원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

▷찾아가기 = 구둔역까지 기차는 서울 청량리역에서 오전 7시, 정오, 오후 7시 등 하루 세 차례 출발하며,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